[주선희의 SUCCESS 인상학] 머리카락(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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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저명한 미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머리카락은 하나의 숲, 그것은 매혹적인 숲'이라고 했다. 인상학에서도 머리는 숲이며, 머리카락 하나하나는 나무와 같은 것으로 본다. 산이 건강하지 않으면 나무가 잘 자랄 수 없으며, 가지의 모습과 잎만 살펴도 산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머리카락에는 그 사람의 상태와 특성이 녹아 있다. 흔히 '여자가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은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는 암시라 하고, 시위나 투쟁에서 분노와 항의를 표시하기 위해 삭발을 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머리카락으로 그 사람의 상태나 성격을 읽으려면 우선 머릿결을 살펴보자.

명당에서 자란 나무의 잎이 무성하듯 머릿결은 몸의 기혈을 보여준다. 몸이 피곤하다거나 하는 육체적인 요소보다 기분이나 마음 상태 같이 내적인 부분의 영향이 더 크다.

얼마 전 숨가쁘게 직장생활을 하다 오랫동안 꿈꾸어 온 자신의 일을 막 시작한 사업가를 만났다. 하루에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하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머리카락에 윤기가 돌고 단정했다. 예전의 푸석푸석하고 헝클어졌던 머릿결을 떠올리며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 지셨군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활짝 웃으며 "기분은 전에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한창 열렬한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피곤한 몸으로 늦게 귀가하더라도 머릿결에서 빛이 난다. 반면 갑자기 가족이 아프다거나 근심거리가 생기면 불과 한두 달 만에 머릿결이 완전히 변하거나 하얗게 새는 경우도 있다.

한 단체에서 진행한 인상학 수업 중 한 40대 여성이 교실을 잘못 찾아온 적이 있다. "어, 이 교실이 아니네"라며 돌아 나가는 그 여성의 머리는 산발인데다 머릿결도 푸석푸석했다. "틀림없이 혼자 사는 분일 것"이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어떻게 알았느냐"며 놀라워했다. 머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신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주변에 관심이 없고 여유 없는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작은 심적 변화도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머리카락이다.

머리카락의 상태로 성격을 읽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이 굵고 두꺼운 사람은 기질이 강하고 건강하다. 고집이 있고 타협을 싫어하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소신을 지키고 친구를 소중히 하는 의리파이기도 하다. 다소 공격적인 면이 있지만 친해지면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반대로 머리카락이 아주 가늘어 힘이 없는 경우는 자기 주장이 명확하지 않고 몸도 허약한 편이다.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진득하지 못해 비밀을 누설하는 일도 많다. 너무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중간 굵기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건강도 성격도 건전할 가능성이 크다. 잘 끊어지지 않고 또르르 말리는 가는 머릿결이 굵은 머릿결에 비해 오히려 건강하다.

중년 남성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머리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이유로 대머리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인상학적 운기로 보면 이마가 넓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마는 복을 받는 마당이므로 마당이 넓어지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발이나 앞머리로 이마를 덮는 것은 생각의 마당인 이마를 좁히는 것이므로 하늘에 먹구름이 끼는 것과 같다. 지나치게 가리는 것 보다 적당히 가리는 것이 보기에도 답답하지 않고 운기에도 좋다.

흰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면 다시 젊어진 것과 다름 아니다. 때문에 젊은이처럼 일에 부대끼는 생활의 선택을 의미한다. 흰머리는 관록이므로 현역이 아니라면 그 자체도 멋이 있다. 단풍놀이를 연상하면 된다. 흰머리 그대로 정직한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부작용도 없고 멋스럽다.

비틀스가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고 더벅머리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유럽 젊은이의 정신을 대변했듯이 헤어스타일은 내 정신의 모습이다. 머리를 다듬는 것은 그래서 정신을 다듬는 것이다. 오늘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한 번 더 보자. 내 머리가 잘 정돈돼 있는지. 그리고 빗질을 한 번 더 하자. 내 정신을, 내 인상을 가다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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