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보증 폐지' 왜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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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연대보증은 97년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후 실업이 급증하면서 특히 중산층 직장인들의 연쇄 개인파산을 부추긴 주범으로 꼽혀왔다.

현재 연대보증에 따른 금융권 대출은 67조~68조원에 이른다.

이는 전체 금융기관 대출의 30%가량을 차지한다.

따라서 연대보증이 폐지되면 국내 금융기관의 대출관행에도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즉 담보.보증 위주의 대출이 줄고 고객의 신용에 따라 대출금액.기간.이자 등이 결정되는 선진 금융관행이 정착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고객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신용평가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또 고객들도 철저한 개인관리를 통해 미리미리 자기의 신용도를 높여둬야 원하는 때에 필요한 만큼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 단계적 폐지 = 금감원은 우선 ▶개인의 경우 직계가족에 한해 1천만원 이하 ▶기업은 일정지분 이상을 가진 대주주로 연대보증인 자격을 제한할 방침이다.

다만 1천만원이 넘는 대출에 대해서도 부분 보증을 인정해 신용이 떨어지지만 급전이 필요한 사람의 대출길을 열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컨대 2천만원이 꼭 필요한 사람의 경우 연대보증없이 자기신용으로 1천만원, 나머지 1천만원은 연대보증인을 세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적용은 우선 신규대출부터 하되 기존대출은 1~2년간의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대신 기존대출을 연장할 때는 일단 연대보증을 없앤 뒤 개인신용에 따라 대출규모를 다시 조정토록 할 방침이다.

이미 보증인이 있는 기존대출에 이를 곧바로 적용할 경우 금융기관은 물론 고객들에게도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백영수 (白永守) 감독2국장은 "연대보증을 한꺼번에 없앨 경우 극심한 신용경색과 개인파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며 "이르면 7월부터 시행하되 완전폐지는 2002년까지로 잡고 있다" 고 밝혔다.

가계대출과는 달리 기업의 경우 어떤 경우에도 오너 경영인은 연대보증을 세우도록 한다는 게 금감원의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이헌재 (李憲宰) 금감위원장은 최근 "기업주가 경영까지 할 경우 무한책임을 지워야 기업의 부실을 막을 수 있는 만큼 연대보증이 꼭 필요하다" 고 밝힌바 있다.

대신 고용 경영인이나 임원에게 연대보증을 씌우는 일은 철저히 금지된다.

◇ 금융기관 대응전략 = 정부 방침이 연대보증 조기 폐지로 가닥이 잡힌 만큼 은행들로서도 이에 대비한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개인신용대출 시스템 (CSS) 을 도입 중인 국내은행은 신한.하나은행 정도. 지난해 12월부터 대출 때 고객점수제를 적용 중인 신한은행은 제도시행 후 대출민원이나 연체율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연체율이 0.5% 정도로 일반 가계대출의 8%에 비해 급격히 낮아졌다" 며 "자기신용능력에 따라 대출이 이뤄지는 선진국형 대출관행이 결국 은행.고객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방증"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대보증 제도는 금융기관이 개인의 신용정보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국내 대출관행상 아직까지는 '필요악' 이란 게 중론. 따라서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서둘러 연대보증을 폐지하면 힘없는 중소기업.서민들만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질 것" 이라며 "금융 인프라를 먼저 갖춰놓고 이에 맞춰 단계적으로 폐지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고 지적했다.

◇ 철저한 개인관리 필요 = 연대보증이 폐지되면 개인의 신용정보가 곧 모든 대출의 절대기준이 된다.

신용을 두둑이 쌓아두는 게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대출받는 지름길이 된다는 뜻이다.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신용카드 대금도 정확히 결제하면 이런 기록들이 모두 은행전산자료로 축적돼 신용점수도 높아진다.

반대로 자신의 신용정보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상습연체자는 적색거래자로 전 금융기관에 통보되는 만큼 아예 은행 문턱을 두드릴 생각을 말아야한다.

게다가 앞으로는 세금이나 의료보험.국민연금 납부실적도 금융전산망에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런 신용정보를 꼼꼼히 챙기고 대출 때는 자신의 신용현황을 정확히 일러주는 등 철저한 개인관리가 필요하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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