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중요시설 안전… 공항.항만 등 경비 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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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가 중요시설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

11일 밤 MBC에 교회 신도들의 난입으로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져 국가 중요시설 경비에 커다란 허점을 보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가 중요시설은 대통령 훈령에 따라 '위해세력이 가해오는 각종 공격으로 인해 파괴 또는 기능 마비가 생겼을 때 국가의 경제.국방 등에 심각한 상황을 미칠 수 있는 시설' 을 말하는 것으로 중요도에 따라 등급을 나눠 관리하게 돼 있다.

◇ 실태 = 이들 시설은 특별한 경비규정을 두고 있어 무엇보다 일반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상당히 까다롭다.

그러나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가 중요시설인 공항.항만.연구소의 경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일반인들이 검문도 없이 출입하는 등 허술한 것으로 지적됐다.

공항은 외곽초소에 반드시 24시간 경계를 서도록 돼 있으나 일부 망루는 하루종일 텅 비어 있었고 계류장 내 공사에 신분증을 달지 않고도 인부들이 출입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 MBC 난입 사태 = 방호 당사자인 MBC와 돌발사태 때 경비 책임자인 경찰의 허술한 대응이 방송중단을 가져왔다.

우선 사장이 방호 책임자이지만 제대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주조정실.출입문은 2중 차단장치 설치가 규정인데도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쉽게 점거당했다.

출입자의 신원확인도 허술해 방송 시작 5분 전에 이미 일부 신도들이 교양제작국까지 찾아가 담당PD의 멱살을 잡고 항의를 벌였지만 정문 경비자들은 신원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MBC는 자체 경비로 63명의 청원경찰이 3조 2교대로 근무하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난입하는 경우에는 경비가 불능상태에 빠진다.

따라서 사전에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해야 하는데도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MBC 노조는 이날 불과 20여분만에 주조정실이 점령당한 것은 자체 방호시스템의 기본조차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경찰의 안이한 대응 = 경비 책임자인 경찰의 대응도 안이했다.

주야간 2회씩 4회 이상, 이상징후 발견시에는 매시간 순찰하도록 돼 있지만 이날 신도들의 움직임이 파악됐음에도 매시간 순찰을 돌지 않았다.

또 국회와 방송사 등 국가 중요시설이 산재한 여의도의 경우에는 관할 영등포서장이 2개 중대로 구성된 여의도 타격대를 별도로 편성, 경비하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오후 8시30분 퇴근시켜버렸다.

경찰의 경비 공조도 문제였다.

신도들이 집회를 마친 후 버스에 나눠 탑승하기 시작한 것은 오후 10시30분쯤이어서 만민중앙교회를 관할하는 남부서에서 이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영등포서에 전달했다면 방송국 납입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보안전문가들은 "선진국의 경우 국가 중요시설을 출입할 때는 경비원이 화장실까지 쫓아가는 등 보안의식이 철저하고, 중요시설 출입문에는 자동 차단장치가 달려있다" 고 말했다.

◇ 감찰 조사 = 경찰청은 이번 사태가 경찰의 늑장출동으로 악화됐다는 지적에 따라 이무영 (李茂永) 서울경찰청장과 서울 영등포.남부경찰서장 등 관할 경찰 관계자를 상대로 감찰조사에 착수했다.

김광식 (金光植) 경찰청장은 이날 국가 중요시설인 방송사가 특정 종교집단의 시위에 점거되고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한 경찰 대처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감찰조사를 철저히 벌이라고 지시했다.

김기찬.김태진.이무영.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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