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시청료 밀려도 블랙리스트에… 신용불량자 남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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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회사원 金모 (41.광주시광산구) 씨는 최근 분통이 터지는 일을 당했다.

맞벌이하는 부인이 자신 명의로 발급받은 S백화점 카드 사용료 1백43만원을 연체했다고 백화점측이 H신용평가회사에 신용불량 거래자로 등록하는 바람에 은행신용카드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백화점.통신업체.할부판매업체 등이 신용정보회사에 신용불량 거래자 등록을 남발해 소비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주지도 않고 제대로 통보도 하지 않은 채 신용불량 거래자로 등록, 애꿎은 '신용 전과자' 를 양산하고 있다.

올들어 지금까지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피해자들의 고발과 상담이 1백12건에 이르고 일반 소비자단체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대상이 지난해부터 기존 금융대출금과 카드대금 연체자 외에 휴대폰.무선호출 등 각종 통신요금과 유선방송 시청료 연체자로까지 확대되면서 피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신용불량 거래자로 등록되면 금융권 대출은 물론 은행.백화점.자동차.의류회사 등이 발행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등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

◇ 피해 실태 = 李모 (46.경기도안산시고잔동) 씨는 최근 S사의 무선호출 사용료 3만5천원이 연체돼 신용불량 거래자로 등록됐다는 통보를 H신용정보사로부터 받았다.

무선호출기를 사용한 적이 없는 李씨는 수차례 해당 업체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결국 자신의 명의가 도용된 사실을 확인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신용불량 거래자에서 해지됐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趙모 (49.대전시중구유천동) 씨는 사전은 물론 사후에도 아무런 통보도 없이 신용불량 거래자가 된 경우. 때문에 趙씨는 지난달 25일 모 백화점에 백화점 카드로 물건을 사러갔다 지난해 유선방송 시청료 4만7천원을 미납, 신용불량거래자로 등록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趙씨는 "유선방송 요금 체납이나 신용불량 거래자가 된 사실을 전혀 몰랐다" 며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이렇게 피해를 줄 수 있느냐" 고 분통을 터뜨렸다.

◇ 신용불량 거래자 등록.기준 = 백화점.통신회사.할부판매업체들이 각종 요금 연체자를 신용불량 거래자로 등록해 달라고 신용정보회사에 요청하거나 신용정보회사가 연체금 회수 대행을 하다 못받으면 직권으로 등록하기도 한다.

현재 신용정보회사는 한국신용정보.한국신용평가 등 모두 17곳. 등록기준은 보통 은행.보험사.백화점의 경우 연체액수에 상관없이 3개월 이상 요금을 내지 않을 경우 올린다.

◇ 문제점 및 대책 = 당사자에게 사전.사후 통보가 제대로 안되는 데다 업체마다 신용불량 등록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또 신용불량 거래자 '딱지' 를 떼는 것도 전적으로 소비자 몫으로 돼있다.

금융전문가는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주지 않고서는 신용불량 거래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광주 =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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