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 과학] '문둥이 콧구멍에 박힌 마늘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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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문둥이 콧구멍에 박힌 마늘씨도 빼먹는다' 는 험악한 속담이 있다. 어감만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의미도 나쁘다.

'지나치게 인색하고 하는 짓이 더러우며 남의 것만 얻으려 한다' 는 뜻이니 사람을 앞에 놓고 직접 말하긴 뭣한 속담이다.

콧구멍에 박힌 것이 다른 것이 아닌 마늘씨인 까닭이 궁금하다. 단군신화에 마늘과 쑥이 등장하는 것도 옛 조상들이 마늘을 범상히 보지 않았음을 나타내 준다.

마늘이 항암.콜레스테롤 강하.살균 등 수많은 신비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꾸준히 입증돼 왔다. 냄새가 강한 것이 몸에 좋을 것이라는 예부터의 막연한 생각들이 구체적인 성분으로 확인돼 온 것.

마늘의 독특한 냄새를 일으키는 성분은 '알리신' 이라는 황화합물. 그냥 두면 냄새가 나지 않지만 자르거나 다지면 냄새를 뿜어대며 상처 난 마늘의 몸에 침투할 수 있는 각종 세균이나 곰팡이로부터 마늘을 보호해준다.

이미 1858년 파스퇴르가 마늘에 항세균성 성분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슈바이처도 마늘이 설사에 좋다는 것을 알고 아프리카로 가져간 사실이 있다. 슈바이처는 25만분의 1로 희석한 마늘즙이라도 비브리오균이나 바실루스균을 넣으면 죽는 것을 관찰해 냈다.

일본의 한 제약회사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조건에서 생장시킨 마늘에서 추출한 화합물이 뇌 신경세포의 죽음을 지연시키고 새로운 신경 가지 형성을 촉진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유럽에서 이 마늘의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마늘 추출액을 에이즈 환자들에게 정맥주사로 투여하면 환자들이 흔히 겪는 각종 감염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마늘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효능도 달라진다.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연구팀은 마늘을 자르거나 갈아서 10분 정도 놓아두었다가 요리해 먹는 경우는 항암효과가 상당히 강하게 유지됐지만 바로 열을 가하면 항암효과가 줄어든다는 동물실험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니 속담에서 마늘씨를 통째로 콧구멍에 넣은 것은 일리가 있는 셈이다. 다만 한센병 또는 나병에 마늘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결핵균과 흡사한 항산 (抗酸) 균 때문에 걸리는 나병은 신경이 죽어 가 코가 내려앉기도 하고 손가락이 뭉개지기도 하는 병. 이제는 1년간 꾸준히 약을 먹으면 완치되지만 치료제가 없던 옛날에야 그만큼 무서운 병도 없었을 터.

약도 없던 나병에 혹시나 해서 넣어둔 마늘을 빼내 먹는 이야말로 '질 나쁜 인간' 의 대표가 아니고 무엇이랴.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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