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04.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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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8장 도둑

격렬한 행위가 끝난 다음, 전신을 감고도는 여운의 끝자락까지 추적해서 안아내려는 그녀의 노력도 매우 이성적이면서 분석적이었다. 행위가 끝나기 바쁘게 수건부터 찾으려는 봉환을 그녀는 노골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제지하며 내뱉는 말이 있었다.

"가만 누워 있어요. " 두 사람은 살갗에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등 뒤 쪽 이부자리의 거북함에도 불구하고 흡사 하얀 쟁반에 올려진 껍질 벗긴 두마리의 깐새우처럼 전라의 몸을 완벽하게 노출시킨채 천정을 향해 반듯하게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토록 삼엄한 정지 (停止) 의 행위는, 꺼림칙한 체액들을 재빨리 세척하고 냉큼 홀가분해지고 싶다는 욕구에 상당한 억제력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격렬했던 몸짓은 어쩔 수 없는 상승 일변도였다면 그렇게 누워있어야 하는 막연한 조망과 나태행위는 그와는 상반된 추락과 침잠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땀에 젖은 살갗 위로 엷은 공기가 빗질하며 흔들릴 때, 작고 미세한 체모들이 하나 둘 머리를 들어 발기하고, 먼 파도소리가 벽을 타고 스쳐갈 때 느끼는 절묘한 휴식과 이름 지울 수 없는 위로는 삽입의 열기와는 또 다른 흥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고요에 대한 기도나 탐구 같기도 했던 그 침잠의 자세는 바로 희숙이가 터득하고 있는 섹스의 또 다른 묘미였다. 그녀는 그때를 일컬어, 생크림을 살짝 바른 두 개의 딸기가 담겨진 만찬장의 후식 쟁반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었다.

초대된 손님들은 후식 끝에 냅킨으로 입 언저리를 가볍게 훔치고 나서야 비로소 식탁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처럼, 얼마의 시간이 흘러간 뒤에 그녀는 잊지 않고 젖은 물수건을 봉환의 손에 가만히 쥐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보여주는 기교는 형태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주위의 환경변화 때문에 단조롭게 답습되는 행동들은 그때마다 짜릿한 신선도를 훼손받지 않았다.

벌거벗은 오리걸음으로 전기 스위치로 다가가 상반신을 묘하게 꼬아 뒤돌아보며 불을 끌까하고 묻는 것도, 그리고 행위 뒤에 후식을 차려놓는 것도 역시 그녀가 빠뜨리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잠자리를 옮겨 다녀야 했고, 그때 선택된 숙소의 환경과 방의 구조와 조명등의 조도 (照度) , 그 방에 놓여있는 자질구레한 부속품들이 그녀의 다양하지 못한 전위행위들을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기여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게걸스럽게 숙소를 옮겨 다녔고, 해가 뜬 후까지 늦잠을 잤다.

안면도로 돌아갈 날짜가 이틀이나 지체되고 있었으므로 손씨로부터 걱정스런 전화까지 걸려왔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희숙이가 전화기를 낚아채서 언니를 바꾼 다음 소곤거리는 말소리로 재촉과 안달을 가볍게 잠재워버렸다.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 대신 신혼여행을 좀 더 길게 잡은 것인데, 무슨 불평들이냐고 쏘아붙였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는 역시 지난 번에 손씨와 같이 들러 거래가 되었던 양양의 오색이었지만, 거진항에서 화진포를 거쳐 속초까지 그다지 멀지 않은 노정에 사흘을 허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 두 사람을 위해 언제나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차창을 스쳐가는 바닷가의 풍경도 아직은 을씨년스러웠으나 두 사람에겐 쓸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토록 말문을 열지 못하도록 조처하였으나 안면도로부터의 전화는 자꾸만 걸려왔다.

"언니가 회를 치고 있네. " 희숙은 아예 핸드폰의 스위치까지 끄고 가방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 있는 여행에 전화까지 꺼버리는 희숙의 방만한 행동이 거슬렸으나 봉환은 달다쓰다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안면도의 언니 내외를 제압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독선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이었던 봉환의 성깔까지 깔아뭉개 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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