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9월이면 ‘클래식 특별시’ 되는 이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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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이탈리아 ‘아스콜리 피체노 페스티벌’의 개막 연주를 맡은 ‘서울 바로크 합주단’. 마을에 내려오는 유서깊은 성당과 교회 등 기존 건물과 유적지를 공연장으로 쓰는 것이 이 지역 음악 축제의 특징이다.


12일 밤 9시(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아스콜리 피체노의 ‘산 베난지오’ 교회. 보통은 음악회가 끝나갈 이 시간에 ‘서울 바로크 합주단’이 무대에 올랐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교회 안에는 여섯 개의 불빛만 남았다. 18명 남짓한 현악 앙상블은 기침 소리 하나 없는 어둑한 공간에서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로 연주를 시작했다. 400석 남짓한 교회당에 ‘서울 바로크 합주단’ 특유의 선명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2009 아스콜리 피체노 페스티벌’의 개막을 알리는 연주였다.

◆마을 전체가 무대=이 페스티벌은 13년째 초가을이면 마을 전체를 음악회장으로 바꾸며 열리고 있다. 2주 동안 실내악을 중심으로 한 공연이 매일 계속된다. 밤늦게 시작하는 것은 이탈리아 특유의 관습 중 하나다. 공연은 대부분 무료. 지역 주민이 대부분인 청중에게 문턱을 낮췄다.

아스콜리 피체노는 로마에서 차로 3시간쯤 걸리는 전원 도시. 농업을 주로 하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에 성당과 교회만 50여개다. 페스티벌의 음악 총감독을 맡고 있는 첼리스트 마이클 플랙스만 독일 만하임 대학 교수가 주목한 것도 이 점이었다. “로마나 피렌체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아름다운 교회와 성당이 많아 음악회를 열기에 안성맞춤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과 독일, 스위스 등에서 오는 손님을 맞아 13년 전 자그마한 음악회를 시작했다. 카페와 야외 시장도 무대로 바꿨다. 이때 좋은 반응을 얻어 이탈리아 마르케 주(州) 정부의 재정으로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개막 연주를 맡은 서울 바로크 합주단은 그동안 참가자중 가장 멀리서 온 연주 단체로 기록됐다.

◆서울 바로크 합주단, 해외 연주 100회 눈앞=이날 연주는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으로 계속됐다. 로마의 작곡가가 18세기에 만든 이 유명한 작품을 이탈리아의 오보이스트 루카 비냘리가 맡아 협연했다.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인 그는 정돈된 음색과 세련된 표현으로 ‘원조’의 진수를 보였다. 서울 바로크 합주단과의 호흡도 편안했다. 페스티벌은 이탈리아의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실내악 단체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숭고한 건축물과 한적한 분위기는 철늦은 휴가를 즐기는 청중에게 주는 페스티벌의 선물이다.

1965년 창단한 서울 바로크 합주단은 해외 연주 100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13일 아스콜리 피체노의 ‘벤티디오 바소’ 극장에서 펼친 두번째 공연이 이 단체의 99번째 해외 연주.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씨는 “올 여름에도 이탈리아의 페스티벌에서만 다섯 번 초청 연주를 열었다”며 “한국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축제를 찾아 무대에 서면서 두 나라의 문화가 교류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내년 창단 45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공연을 계획 중이다.

글·사진 아스콜리 피체노(이탈리아)=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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