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다시 '군복' 입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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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일 방위협력 가이드라인 법안이 일본 각정당간의 복잡한 절충과 협의를 거쳐 중의원을 통과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안보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진다.

한국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미.일 안보체제는 2차세계대전 후 반세기 이상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을 지키는 데 중심역할을 했다.

이 지역에 긴급사태가 일어날 경우 미국과 일본이 효과적인 군사협력을 할 수 있도록 대강의 내용을 규정한 것이 가이드라인이고 그것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관련법안이다.

가이드라인 법안의 논의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관심이 컸던 부분은 '주변사태' 의 정의 (定義) 였다.

가이드라인법은 주변사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공격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는 사태" 라고 명기한다.

일본 주변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일본에 당장 위험은 없지만 사태가 악화되면 일본에 불길이 번질 사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반도에서의 분쟁과 대만해협에서 일어나는 위기다.

이건 상식적인 해석이지만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지역을 명시하지 않을 뿐이다.

가령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군이 개입한다.

일본은 후방에서 미군의 작전을 지원한다.

일본 자위대가 미군이 사용할 무기를 수송하고 조난당한 미군을 구조하고 별도로 만들 법에 따라서 북한으로 물자를 싣고가는 외국의 선박을 해상에서

검사하는 지원활동을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북한에 대한 일본의 적대행위다.

그래서 북한이 일본을 직접 공격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된다.

지난 1월 자민당과 자유당의 자자연정 (自自聯政) 이 출범할 때부터 가이드라인 법안의 조기 통과가 예상되었다.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 (小澤一朗) 당수가 일본 보통국가론을 열성적으로 주창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본이 대외적으로, 특히 군사적으로도 국력에 걸맞은 역할을 맡자는 의미다.

일정수준의 재무장을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나토의 유고공습을 계기로 독일이 전후 처음으로 군사작전에 참가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무장을 갖추고 지역분쟁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법적인 절차를 5월까지 끝낸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재무장하는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은 이중성을 드러낸다.

일본이 평화헌법 제9조의 방패와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서 군사적으로 스스로 손발을 묶어놓고 있을 때 우리는 경제밖에 모르는 일본의 이기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일단 일본이 미.일안보의 틀 안에서나마 지역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준비를 하자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를 비판하고 경계한다.

일본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군사적인 역할을 맡는 것은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우리는 지금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던 1905년에 살고 있지도 않고 일본이 대륙침략을 시작한 1930년대에 살고 있지도 않다.

중국이 그때의 중국이 아닌 것 같이 일본도 그때의 일본이 아니다.

가이드라인 관련법에 시비를 거는 것은 한반도 유사시 (有事時) 일본이 미군의 효과적인 한국지원을 후방에서 돕는 데 시비를 거는 것과 같은 자가당착이다.

가이드라인 관련법의 제정은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는 길을 열고 그것은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을 촉발해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하고 통일에도 방해가 된다는 걱정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독일은 세력균형에서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통일했다.

60년대 북한은 중.소분쟁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우리의 외교능력 여하에 따라서는 중.일경쟁은 우리에게 소중한 캐스팅 보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보통국가' 로 가는 일본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눈으로 보자.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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