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병무비리 낳는 사회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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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뇌물을 주고 병역특혜를 받은 병무비리 관련자 2백7명이 적발돼 1백명 구속, 80명 불구속에 27명이 지명수배됐다.

단일 형사사건에서 1백명이나 구속된 것은 처음있는 일로 병무비리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 사건은 청탁자 신분이 은행장 부인.기업인.교수.의사.공직자.연예인.운동선수 등 대부분 사회지도층이거나 유명인사들이어서 이른바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만 병역을 치른다' 는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들의 62%가 부유층 밀집지역이라는 서울 강남에 거주한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 가 어느 정도인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직 이 사건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입대비리 관련자만 발표되고 부정 의병제대 등 전역비리 부분이 제외된 것은 의문이다.

국방부 감사 결과 96, 97년 의병전역자가 폭증한 것으로 드러난데다 이들 중 상당수가 신체검사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던가.

혐의자가 워낙 방대한데다 증거확보가 쉽지 않았다고 수사관계자는 이유를 말했지만 병무비리 근절을 위해서는 반드시 수사해야 할 부분이다.

또 뇌물의 상납 고리를 밝혀내지 못한 것도 문제다.

준위나 원사 등 하위직 공직자들이 몇년씩 한 자리를 지키면서 수천만~수억원씩 챙겼다는 것은 단독 범행으로 보기 힘들다.

이미 뇌물이 조직화.체계화됐다고 봐야 한다.

6억원 뇌물 혐의를 받고 있는 원사가 달아나 수사를 못했다고 하지만 병무비리 근절을 위해서는 이같은 조직구조부터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병역의무는 학력.빈부 차이와 관계없이 절대적 평등이 특징이고 오히려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 부유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 할 의무다.

선진 외국에서는 왕족을 비롯한 상류층 인사들이 자녀를 전쟁터에 내보내 나라 지키기에 앞장서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지 않는가.

국방부는 지금까지 반복된 대책들이 모두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더 이상 병무비리가 발붙일 수 없도록 완벽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물론 단속도 지속적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것은 '병역을 제대로 마친 사람이 면제받은 사람에 비해 결과적으로 손해 보는 사회풍토' 를 개선하는 일이다.

최소한 군에 안 간 사람이 간 사람보다 그 기간만큼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한 범국가적인 노력과 함께 병역의무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도록 더욱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누구에게나 발전.도약을 위한 시기인 청년기 복무기간이 일생의 공백이 되지 않도록 군 당국은 병영문화 개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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