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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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금 문학과 지성사 (문지) 는 지식의 수명 단위에 역사를, 즉 시간적 지속성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다.

'문학과 지성' 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3개의 세대를 넣고 그 세대들 사이에 연속성과 변화의 맥락을 부여하겠다는 시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지성 이상으로 애정이다.

선.후배들 간에 존경과 신뢰가 부재하고 허심탄회한 대화공간이 열려 있지 않다면 역사를 만드는 작업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정의 체계는 일종의 구심적 체계, 비밀 결사의 체계와도 같아서 바깥에 대해서는 오히려 폐쇄적일 수 있으며 종종 그런 비난을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 비난은 대개 엘리티즘에 대한 비판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문지가 지적 실험을 즐기고 형태의 혁신을 추구하는 작가들을 정치현실에 민감한 작가보다 중요히 다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아무튼 이러한 태도는 한국의 문학계 전체의 장에서 문지가 담당하고 있는 고유한 몫이며 그 태도 자체를 두고 찬반을 표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문제는 문지의 엘리티즘에 대항할 다른 문학적 태도들이 90년대 이래 문화산업의 토네이도와 함께 급격히 증발했다는 것이며 그 회오리에 휘말려 문지 자신이 진이 빠져서 바깥과의 대화의 통로를 여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적 특성을 지키면서 대화의 장을 넓히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역사를 실험 중인 문지가 동시에 짊어져야만 하는 또 하나의 긴박한 과제이다.

정과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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