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애씨 스릴러 만화 '배스 앤 샤워'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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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소수지만 열성적인 매니어 군단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 이정애 (36) 씨가 등골이 오싹한 스릴러 한 편을 내놨다.

'시온' 이라는 일종의 절대적 존재이자 엽기적인 살인마와 함께 살인을 저지르는 6명의 남녀를 둘러싼 '배스 앤 샤워 (Bath & Shower.서울문화사)' .지난해 8월부터 약 8개월간 월간 '나인' 에 연재한 것을 최근 1권으로 묶었다.

이 작품의 구조는 10명의 등장인물이 정체불명의 살인마에 의해 차례차례 목숨을 잃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작 '10개의 인디언 인형' 을 연상시킨다. 7명이 모여 있지만 누가 '시온'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은 "지식은 자기 보존이 아니라 헌신으로 치환될 때만이 그 정당성을 확보한다" 는 데 의견을 모으고 설악산 등반을 온 저명 학자들의 모임인 '문평 사회학회' 를 습격, 전원을 살해한다.

이 과정에서 시온의 강령에 반대하는 반란자가 내부에서 생겨나 동료들을 하나씩 죽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독자도 함께) 일대혼란의 늪으로 빠져든다.

목욕과 샤워는 둘 다 몸을 닦는 행위. '닦는다' 는 것은 성찰한다는 의미로, 타자 (他者) 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려는 작가의 의도를 나타낸다. 절대자 시온을 갈구하고 다른 사람을 시온으로 믿으려 하며 또 스스로 그가 되기도 하는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의 천태만상을 통해 인간의 관계맺기에 대한 고찰을 수행하고 있다.

'열왕대전기' '일요일의 손님' 등이 그렇듯 '난해하다' 는 게 이씨 작품의 특징이자 장단점. 중반까지 좀 지루하다가 '행동' (살인) 이 본격화되는 지점부터 가파르게 결말로 치닫는 속도감이 일품이다.

★★★ (5개 만점)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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