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세르비아 민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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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3~2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창설 50주년 기념 정상회의는 '코소보회의' 가 됐다.

유고 코소보사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나토의 장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나토 정상들은 유고에 대한 공습을 무한정 계속하고, 해상봉쇄를 가하기로 결의했다.

이와 함께 마지막 수단으로 지상군 투입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지상군투입 규모는 전쟁 시나리오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계산에 따르면 난민 보호만을 목적으로 할 경우 3만~5만명, 코소보지역 해방을 위한 제한적 지상전엔 10만~12만5천명, 그리고 유고 전지역을 대상으로 한 전면전엔 20만명이 필요하다고 집계하고 있다.

병력 배치에 필요한 시간은 3만~5만명일 경우 2~3주, 10만명을 넘으면 1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상군 투입에서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보급로 확보다.

10만명을 투입할 경우 매일 트럭 2천대 분량의 보급품을 육로로 실어 날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항공수송은 양적으로 한계가 있다.

현지는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알바니아에서 코소보 중심부까지 가려면 2차선도로 3백㎞를 가야 하며, 해발 1천m 높은 산과 지뢰밭을 통과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유고 지상군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유고 세르비아인들의 용맹성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차세계대전 중 세르비아를 침공한 오스트리아군은 전체 45만명 가운데 절반을 희생하고 물러나야 했다.

2차세계대전 중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끈 30만명 게릴라 부대는 독일.이탈리아군 35개 사단을 붙잡아둠으로써 연합군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파르티잔활동이란 말도 유고에서 시작됐다.

전후 (戰後) 티토는 소련에 대항하면서 파르티잔 전통에 따라 '총력방위' 를 위한 90만명 민병을 유지해왔다.

이들은 험준한 산악지대에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무기.식량을 비축해 놓고

있다.

현재 민병 숫자는 40만명으로 줄었고, 장비도 구식이다.

하지만 세르비아인 특유의 용맹성과 현지 지형에 익숙함을 무기로 나토 지상군을 괴롭힐 것이다.

일부에선 베트남전쟁의 재판 (再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코소보사태가 지상전으로 확대될 경우 사태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르비아 민병이다.

이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경우 전쟁은 커다란 희생을 내는 혈전 (血戰) 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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