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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살인적 일정 잘 소화, 이 대통령도 고마워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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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일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오후스(덴마크)=연합뉴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달 24일부터 5일까지 이명박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4개국을 순방했다. 12박13일 동안 헝가리·오스트리아·덴마크·벨기에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박 전 대표는 순방국 정상 등과 만나 한국과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체결, 한-EU 경제협력 강화 등을 희망하는 이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했다.

특사단 일원으로 박 전 대표를 수행한 친이계 안경률·김성태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나라를 위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한 모습을 보였다”며 “박 전 대표는 목표 이상의 것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열성을 다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 대통령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16일 청와대에서 만난다. 특사단에 포함됐던 의원 4명도 자리를 함께한다. 안·김 의원과 친박계인 유정복·김태원 의원이 그들이다. 청와대 회동은 특사외교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다. 의제상으론 정치와 관련이 없는 만남이다. 그럼에도 이날 회동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8개월 만에 만나는 데다 잠시 동안 배석자 없이 단독 회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친이계에선 박 전 대표 측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얘기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탄생의 주역으로 박 전 대표 측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던 이재오 전 의원은 11일 “박 전 대표와 사이가 안 좋을 게 하나도 없다”며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면 그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뛸 것”이라고도 했다. 맹형규 대통령 정무특보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는 좋아질 것”이라며 “청와대도 지속적으로 애쓸 것”이라고 말했다.

특사 보고하는 16일 MB-박근혜 회동 주목

박 전 대표에겐 외교의 원칙이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을 도운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2007년 2월 한나라당 대표이던 그가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를 방문했을 때다. 케네디스쿨의 강연 요청을 받고 대학 캠퍼스에 도착한 그는 제일 먼저 학교 안의 교회를 찾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하버드생의 이름이 교회 안에 적혀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명단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걸 본 대학 관계자는 “한국을 도우려다 목숨을 잃은 동문의 명단이 이곳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한나라당 일행이 묵념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고 박 전 대표는 회고한다.

박 전 대표는 3일 이브스 레테름 벨기에 외교장관, 패트릭 듀발 벨기에 하원의장을 면담하면서 한국전쟁 때 국방장관직을 그만 두고 유엔군으로 참전한 모로 드 멜렌의 얘기를 꺼냈다. “멜렌 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며 “한국은 벨기에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내용의 제안을 하자 레테름 장관, 듀발 의장은 흔쾌히 수용했다고 유정복 의원 등이 전했다. 면담 후 동행한 의원들이 박 전 대표에게 ‘외교부 자료에도 없는 멜렌의 이야기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자 박 전 대표는 “3년 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부를 방문하기 위해 벨기에에 왔을 때 멜렌에 관한 얘기를 듣고 미망인을 수소문해 만났다”고 말했다. “당시 95세였던 미망인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인사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1일 덴마크 휴양지인 오후스의 여름궁전에서 휴가를 보내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을 만나 이렇게 인사했다. “1970년대 초 덴마크 대사가 어머니(고 육영수 여사)에게 여왕에 대한 책과 사진을 보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서재에 두면서 ‘덴마크 여왕님 사진’이라고 얘기했다. 이렇게 만나게 되니 특별히 친숙함을 느낀다.”

마르그레테 2세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아주 반가워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김성태 의원은 “덴마크 여왕이 휴가를 즐길 때엔 다른 나라의 정상도 그를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며 “덴마크 정부가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했음인지 면담이 성사됐으며 환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의원계의 핵심인 안경률 의원은 “다음날 이뤄진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의 면담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가 덴마크를 친환경 국가라고 칭송하면서 해양과 환경을 주제로 하는 2012년 여수 엑스포에 참여해 달라고 하자 라스무센 총리는 ‘기업들과 협의해 좋은 결정을 내리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방문하기 전까지 덴마크 정부는 여수 엑스포 참가 여부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한국 대사관에선 큰 현안이 해결됐다며 반겼다”고 말했다.

이재오계 핵심 안경률 “함께 가자”는 朴 전화에 놀라

친이계인 안경률 의원과 김성태 의원은 박 전 대표를 극찬했다. 안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맡은 책임을 완수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EU 집행위원장과 만났을 때 ‘2010년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등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열혈특사 같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순방국 정상 등과 만났을 때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게 처신한 점도 보기 좋았다”고 했다. 맹형규 대통령 정무특보는 “박 전 대표가 살인적인 일정을 잘 소화하면서 성공적인 특사외교를 했다고 들었다”며 “참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친이계에서 박 전 대표를 높이 평가하는 이야기들이 나오자 여권에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친이·친박계 사이에 해빙기류가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은 “박 전 대표와 함께 다니면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며 “앞으로 자주 대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 다녀와서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났다”며 “이 전 의원과 박 전 대표의 관계도 앞으로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 지지할 것”이라는 이 전 의원의 발언은 그가 안 의원과 만난 다음에 나온 것이다.

박 전 대표는 특사단을 구성하면서 안경률·김성태 의원을 직접 선택했다. 안 의원은 “함께 가자”는 박 전 대표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데려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동행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 전 의원은 미국에 있던 안 의원을 찾아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수행을 잘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에게 ‘왜 안 의원을 골랐느냐’고 묻자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라를 위해서는 누구나 협력해야 한다”는 원칙론만 밝혔다. 박 전 대표가 안·김 의원을 고른 건 친이계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청와대와 친이계의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성헌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애국심을 이 대통령과 주류 측이 알아준다면 다행”이라며 “우리 쪽과의 관계는 그쪽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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