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가구박람회 새경향] '플라스틱가구' 때만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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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가구박람회 20관에 위치한 카르텔 (Kartell) 사의 전시장.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 이 설계하고 카르텔사가 만들어 내놓은 플라스틱 투명 의자를 붉은 색의 로봇이 "꽝, 꽝" 내리치고 있다. 그만큼 튼튼하다는 사실을 선전하기 위한 것.

'라 마리에 (LA MARIE)' 란 이름으로 출품된 이 플라스틱 의자는 수정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성을 강조했다.

20세기 마지막 가구쇼로 기록될 밀라노박람회 (지난 13~18일) 는 플라스틱 소재의 다양한 활용과 투명성, 오리엔탈리즘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플라스틱 소재는 원목가구에 비해 값이 훨씬 싸면서도 질감이 나무 못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개발돼 눈길을 끌었다.

또 반투명 유리인 포기 글라스 (foggy glass) 는 '주방가구의 감초' 라도 된 것처럼 업체마다 빼놓지 않고 문의 소재로 사용됐다.

부엌가구로 유명한 다다 (Dada) 사의 한 관계자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 밖에서 문을 열지 않고도 윤곽을 알 수 있게 함으로써 기능성을 높이는 한편 내부가 완전히 노출되는 데서 오는 산만함을 막기 위해 반투명 유리를 사용했다" 고 설명했다.

오리엔탈리즘도 디자인.색상 등에 많이 반영됐다. 교자상을 연상시키듯 티 테이블 등 탁자의 높이가 낮아지고 완자 무늬를 많이 활용하는 등 동양적인 멋이 눈에 띄게 강조된 것.

발쿠치네 (Valcucine) 사는 완자무늬 모양의 문을 많은 가구에 활용했으며, 중국 고대의 상형문자 문양을 새겨 넣은 가구도 있었다.

박람회에서는 또 화이트와 짙은 브라운 색이 주된 색조로 눈길을 끌었다. 박람회를 참관한 서울대 미대 권영걸 (權寧傑.공간디자인) 교수는 "흰색과 갈색의 조화가 조선시대 사대부집 가구를 연상시킨다" 며 "지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자는 뜻에서 심플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나무.플라스틱.메탈 소재의 결합이 활발하게 시도되는 등 소재사용의 제한이 사실상 무너져가고 있는 것도 이번 박람회의 특징 중 하나. 매지스 (MAGIS) 사의 경우 탁자.의자의 데스크 (판) 를 나무로 처리한 후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다리로 심플한 멋을 살렸다.

반대로 나무로 뼈대를 두른 후 플라스틱 판을 얹은 제품도 선보였다. 냉장고를 붙박이식으로 설치한 후 문을 가구처럼 처리함으로써 장식장과 냉장고의 기능을 함께 살린 가구형 냉장고도 등장했다.

이외에 PVC소재의 일종인 멤브레인이 표면처리 소재로 각광을 받았으며 종이.라탄 (등나무 일종) 등의 천연소재를 적극 활용하는 '자연주의' 도 돋보였다.

◇ 밀라노 가구박람회 = 매년 1월 열리는 쾰른 가구 박람회와 함께 2대 박람회의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 61년 처음 시작됐다.

매년 4월 주제를 달리해가며 열리고 있으며 이번엔 주방가구에 초점이 맞춰졌다. 올 박람회엔 50여개국 2천여개 업체가 참여했다. 국내 업체는 아직 출품한 곳이 없다.

이번에 디자이너를 포함해 70여명의 참관단을 파견한 한샘의 최양하 (崔楊河) 사장은 "경제사정이 어려워 작품을 내지 못했다" 며 "다음 세기 첫번째가 될 내년 박람회엔 꼭 한국 고유의 멋을 듬뿍 살린 다양한 가구를 선보이겠다" 고 말했다.

밀라노 = 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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