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증가, 美 증시 안정의 전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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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30면

많은 시장 참여자가 침체장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증권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됐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기업공개(IPO) 숫자가 늘고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공개는 증시가 회복해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들어서야 늘어나기 때문이다. 1991년이나 2001년 미국 경기침체 직후에 그랬다. 기업 소유자들은 가능한 한 좋은 값을 받고 주식을 팔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직 미국 기업공개가 되살아날 기미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실시된 기업공개는 21건에 지나지 않는다. 한 해 전인 2008년과 두 해 전인 2007년 같은 기간 동안 공개된 기업 수는 각각 39개와 154개였다. 특히 올 상반기 건수는 1991~2007년의 연평균치와 견주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표 참조> 그렇다고 기업공개 시장이 죽었다고 선언하는 게 아니다. 더욱이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기업공개 시장도 회복할 것이다. 실제로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내년 상반기에 기업을 공개하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과거 경험에 따라 ‘기업공개 증가=증시 안정’이라고 해석해선 곤란하다. 과거와 분명히 다른 점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시장 조사회사인 르네상스캐피털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을 공개하겠다고 뜻을 밝히거나 신청서를 밝힌 회사들은 성장하는 정보기술(IT)바이오 회사, 탄탄한 제조업체 등이 아니다.

르네상스캐피털 쪽은“좀 특이한 후보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로 사모펀드(PEF) 등이 보유한 회사들이다. 이 회사들은 거품시대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초기에 사모펀드에 넘어간 곳”이라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사모펀드들이 거품 시절에 빌린 돈으로 사들여 보유했으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헐값에라도 회사를 팔아넘기기 위해 기업공개 대상에 올려놓은 것들이라는 얘기다.

미 SEC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기 난에‘IPO’라고 치고 클릭해 보면 알 수 있다. 한 사모펀드가 보유한 한 호텔체인업체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16억 달러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줄어든 규모다. 순이익을 보면 올 상반기에 3600만 달러 적자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순이익으로 2005년 3억3600만 달러, 2006년에는 3억1500만 달러, 2007년에는 2억7000만 달러, 그리고 지난해엔 1억6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회사는 지금 기업공개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회사들 가운데 그나마 나은 편이다.

또 르네상스캐피털이 기업공개를 희망하는 회사를 조사해 보니 19% 정도가 부동산투자신탁(REITs)이었다. 이들의 자산목록에는 값이 뚝 떨어진 주택과 빌딩으로 가득하다. 주택시장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시세가 그들이 사들인 가격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난다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한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결국 당분간 IPO 시장에는 쭉정이 같은 기업들이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런 기업들 때문에 늘어난 기업공개 숫자에 취해 증권시장이 안정적인 단계에 진입했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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