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국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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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33면

약 170년 전 일본의 사쓰마(薩摩), 지금의 가고시마(鹿<5150>島)엔 경제에 밝은 한 사무라이가 있었다. 즈쇼 히로사토(調所<5E83><90F7>). 영주의 오른팔이던 그는 거덜난 재정을 바로 세웠다. 재정지출을 줄이는 동시에 그는 만기가 2085년에야 돌아오는 초장기 공채를 발행해 돈 많은 상인들에게 반강제로 떠안겼다. 1835년의 일이었다. 이름 하여 ‘250년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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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이 튼튼해지자 그는 공공사업을 일으켜 경기를 부양시켰다. 그 시절 이미 케인스적 경제관을 지녔던 셈이다. 그중엔 임진왜란 때 끌려가 가고시마에 정착해 살던 조선 도공의 후손들을 위한 처우개선 사업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살던 마을과 시내를 잇는 아치형 돌다리를 건설하고, 이름을 ‘고라이바시(高麗橋)’로 붙였다. 지금도 가고시마의 유적지로 남아 있다.

250년채는 메이지(明治) 정부 수립 이후 무효화됐지만,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장기 공채로 기록된다. 사실 만기가 4대를 넘으면 영구공채나 다름없다.

만기가 아예 없는 국채도 있었다. 18세기 중반부터 약 200년에 걸쳐 영국이 발행했던 콘솔채(consols)가 그렇다. 정부가 상환의무를 지지 않는 대신 매년 일정한 이자를 영원히 지급하는 조건으로 발행한 국채다. 이를 산 사람은 나라를 믿고 재산을 맡긴 거나 같았다. 물론 시장에서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어 환금성이 높았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의 승리 덕분에 로스차일드가 떼돈을 번 것도 콘솔채의 대량 매매를 통해서였다. 당시 영국이 막대한 전비를 마련하는 데 콘솔채는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

최근 경기부양에 나랏돈을 쏟아 붓는 바람에 재정적자로 고민 중인 국가들은 귀가 솔깃해질 법하다. 빚은 빚인데, 갚을 의무가 없다니.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도 올 초 이와 비슷한 제안을 했다. 중앙은행권과 별도로 정부지폐를 발행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우리로 하면 한국은행 총재 직인이 찍힌 지폐 외에 국무총리나 기획재정부 장관 도장이 찍힌 돈을 따로 만들어 쓰자는 얘기다. 정부가 상환의무를 지지 않는 이 지폐는 표면금리 0%의 영구국채와 같다. 극심한 불황이 올 것 같으니 돈을 왕창 풀어 경기를 자극하자는 취지였다. 처음엔 관심을 모았으나 출구전략이 거론되는 요즘엔 잠잠해졌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려온 일본에선 영구국채 도입론이 끈질기게 나오고 있다. ‘영구국채는 국가가 꼬박꼬박 배당을 주는 주식과 같으므로 국가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우익적 주장도 뒤섞여, 논의가 다소 혼탁해지는 양상이다.

그런데 영구국채 역시 돈 아닌가. 이게 중앙은행의 관리에서 벗어나 정치바람을 타고 마구 발행되면 방만재정에다 초인플레로 이어진다. 250년채나 콘솔채가 효과를 내던 시대와 지금은 통치체제나 경제구조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선진국에서 영구국채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지금의 재정적자를 해결할 길이 그만큼 막막해 보이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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