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되찾아야 할 미사일 주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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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57년 소련이 발사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는 미국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구궤도에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로켓이란 탄두를 장착하면 곧바로 대륙간탄도탄 (ICBM) 이다.

그래서 60년대 미국 전역은 미.소간 미사일 격차가 가져올 '안보구멍 (Window of Vulnerability)' 논쟁으로 떠들썩했고, '스푸트니크 쇼크' 는 미국이 대륙간탄도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 직접적인 동인이었다.

그런 미국이 4월초 한국이 실시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문제삼았다.

실제 비행거리는 50㎞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실상 3백㎞ 비행능력을 가진 미사일이기 때문에 '사정거리 1백80㎞이상 미사일 개발포기' 를 약속한 '미사일각서' 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미사일각서란 한국이 처음으로 자체 미사일을 개발하던 79년 박정희 (朴正熙) 정부가 미국에 건네준 '미사일자율규제서한' 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정거리를 1백80㎞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미사일 개발을 양해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각종 중장거리 미사일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던 91년 동일한 문건을 재작성해 건네준 것은 '지나친 미국눈치 보기' 라는 표현말고는 달리 설명되기 어렵다.

당시 외무부 북미과장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진 그 문서로 '1백80㎞이상 미사일 개발포기' 를 재확인해준 셈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미사일 개발제한에 대한 한국민의 원성이 만만치 않음을 양국 정부는 알아야 한다.

우선 미.소 미사일 격차에 대해 법석을 떨었던 미국이 남북한 미사일 격차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북한은 남한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미사일을 대량 배치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31일에는 비행거리가 6천㎞에 이르는 발사체를 실험해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러한 북한의 미사일 파워 앞에 한국은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다.

함경도에서 발사된 대포동은 5분만에 서울에 도달해 70도의 각도와 음속의 12배가 넘는 속도로 내려꽂히게 되며, 신계에서 발사된 스커드C가 서울에 도달하는 데는 4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렇듯 국토종심이 짧은 우리의 경우 당장 효과적인 전역미사일방위 (TMD) 망을 구축할 전망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이 공격미사일을 개발해 대북 억지력을 높이는 것은 순리가 아닌가.

북한이 사정거리 수천㎞의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미국이 왜 고작 수백㎞짜리 한국미사일을 시비하기 위해 이토록 안달이란 말인가.

이제 미국도 자국의 세계전략만을 위해 만만한 동맹국의 팔이나 비트는 식의 대외정책은 삼가야 한다.

들리는 말로는 한국미사일의 사정거리를 3백㎞까지 늘리는 한.미간의 원칙적 합의는 이미 2년 전에 이루어졌으며, 미국이 개발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함에 따라 결론이 유보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번의 미사일 실험을 계기로 미국이 3백㎞이하의 미사일 개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진위 (眞僞) 야 곧 밝혀지겠지만 차제에 우리 정부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선은 조약도 합의도 아닌 한 장의 '외교서한' 이 우리의 미사일개발을 20년간이나 제약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자괴를 느껴야 하며, 이제부터라도 미사일주권을 회복하는 데 고심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이 자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억제' 를 위해 동맹국의 안보를 희생시키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노 (No)' 라고 말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사정거리 3백㎞' 를 허용하더라도 이 역시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이다.

휴전선 근처에 배치돼도 북한의 3분의2밖에 커버할 수 없는 3백㎞짜리 미사일로는 효과적인 대북 억지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좁은 국토공간을 감안할 때 적어도 사거리 7백~8백㎞의 미사일이 필요하며, 잠수함발사 및 공중발사 미사일 개발도 착수해야 한다.

한국이 미사일 격차를 줄이고 대북 억지력을 높이는 것은 남북대화나 한.미동맹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며, 이를 위해 정부는 국내 비판목소리는 물론 필요하다면 야당의 목소리까지 활용하는 고난도 (高難度) 대미외교를 펼쳐야 한다.

김태우 핵전문가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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