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대한항공 친족경영] 긴장하는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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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정부측의 강한 압박에 대한 재계 반응은 극도로 부정적이다.

물론 잇따른 사고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직 사고의 정확한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 통치권자가 오너의 퇴진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심하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재계는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전에 없이 강한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이를 계기로 별러오던 오너 체제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려는 것 아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불똥이 튈 것을 우려, 공식적인 의견 표시는 꺼리지만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재벌그룹 A사의 한 임원은 "압박 수위나 여론의 눈총 등을 감안할 때 대한항공 경영진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면서 "만약 그렇게 되면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며 대외 신인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 이라고 우려했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도 "국가 신인도 보호 차원에서 경영자의 과오를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특정 기업의 오너 경영인을 바꾸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심하다" 고 지적했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경직적으로 몰아갈 경우 투자.경제활동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게 된다는 것. 재계는 또 정부가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물갈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려 하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재벌 그룹 B사 임원은 "대통령의 발언은 대한항공에 국한된 게 아니라 5대 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을 타깃으로 한 의도적이고 함축적인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고 해석했다.

C그룹 임원은 "기아 등에서 보듯이 '주인 없는 기업' 도 오너체제 못지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정부는 너무 검증되지도 않은 전문경영인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 지적했다.

대한상의 엄기웅 이사는 "오너 체제로 할지, 아니면 전문경영인을 영입할지는 이해 당사자인 주주나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 라고 잘라 말했다.

재계는 그러나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최근 분위기를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상당한 조치' 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경련 측은 "재벌도 기업개혁 3대 방안 중 하나인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외이사.외부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전문경영인을 확대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면서 정부도 금융제재 등 간접적인 압박 수단을 동원하지 말고 상속.증여세나 공정거래법의 엄격한 적용 등 제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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