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무단방류’ 도발하고 ‘개성임금’ 물러서고 … 북한 속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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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의 기준이 되는 최저노임을 올해는 5% 인상하는 선에서 타결하자고 제안해 왔다.

지난 6월 70~75달러인 월 임금을 300달러로 올리고, 토지 사용료 5억 달러를 내라고 요구했던 입장에서 크게 바뀐 것이다. 정부는 북한 측의 인상안이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개성공단 문제가 풀릴 조짐이다.

11일 통일부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관할하는 북한 특구개발지도총국은 지난 10일 우리 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위원장 문무홍)에 이런 합의서안을 제시했다.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은 “북측안대로 하면 최저임금은 현재의 월 55.125달러에서 57.881달러로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 부대변인은 “북한은 임금 300달러 인상과 토지 사용료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관련한 그동안의 무리한 요구를 사실상 스스로 철회한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최근의 잇따른 대남 평화 공세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개성공단 활성화를 언급했었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협상의 걸림돌을 자진 제거한 형국이다. 지난달 21일 북한의 개성공단 통행제한 원상회복 조치에도 불구하고 남측 당국이 계속 신중한 행보를 보이자 추가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내심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억류 근로자 석방이나 연안호 송환처럼 잘못된 행동이나 요구를 원상회복시킨 데 불과하다”(통일부 당국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임진강 댐 무단 방류로 조성된 대북 비난여론을 무마하려는 것이란 시각도 있다.

북한이 임진강 무단 방류 사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사과를 요구한 지 이틀 만에 유화적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사과 수용 여부 등 북한의 반응도 주목을 받게 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남 비난 같은 강경 분위기로 급선회하거나 26일 예정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을 무산시키는 극단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신중하다. 남북 관계의 현안인 임진강 사태가 북한의 사과 등으로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대화에 나섰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원칙을 지켜 나가야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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