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현장의 두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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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학회장 윤식씨

39년전 오늘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학회장으로 서울대 학생시위를 주도했던 윤식 (尹植.59.전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씨. 그에게 4.19는 여전히 '미완 (未完) 의 혁명' 일 뿐이다.

4.19가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과제가 아직도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 이다.

그래서 당시 희생됐던 1백86명의 '젊은 피' 앞에만 서면 그만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했다.

"서울대는 당초 21일을 D데이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18일 고려대가 먼저 뛰쳐나오는 바람에 부랴부랴 선언문.플래카드.구호 등을 작성, 19일 아침 시위에 나섰던 겁니다. "

그해 11월 尹씨는 서울대 문리대생들을 중심으로 '남북한 서신교환' 과 '장면 (張勉) 총리의 미.소 수뇌 방문' 이라는 대정부 건의문을 발표한 죄 (?) 로 5.16 직후 1년간 실형을 살았다.

요즘 정치현실과 관련, 그는 "당리당략을 떠나 여야 모두 협력하는 자세가 4.19 정신을 올바로 실천하는 길" 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정창현 기자

◇ 부상자 응급치료 맡았던 하상배씨

서울중앙병원 7층 재활의학과장실에는 8명의 젊은 의사가 길거리에서 부상자를 들것으로 옮기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다.

이 빛 바랜 흑백사진 아래에는 '아! 4.19, 중앙청앞 효자동 가는 길목에서 1960년 4월 19일 오후' 라고 적혀 있다.

사진 중앙에 가장 다급한 표정으로 뛰어가는 인물이 이 액자의 주인 하상배

(河祥培.63.울산대 교수) 재활의학과장. 그는 "날마다 사진을 보면서 4.19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고 말했다.

이 사진은 60년 4월 19일 서울대의대 본과 4학년이던 河과장이 서울대의대생 대열에 합류해 시위를 벌이다 광화문 부근에서 경찰의 총에 맞은 학생등 동료들과 함께 이송하는 장면이 한 외신기자에게 포착된 것.

"다음날 새벽까지 의대생들이 중부경찰서 근처에서 수백명의 부상자를 응급처치한 뒤 시발택시 지붕에 실어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 河과장은 "4.19 부상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알려달라" 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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