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다릴만큼 기다렸다', '성과내놔라' 재계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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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일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가 더 이상 5대 그룹 구조조정을 자율에 맡겨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대통령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22일로 예정됐던 정.재계 간담회를 연기했다" 고 밝혀 사실상 26일께로 미뤄진 간담회 전에 가시적 성과를 내놓으라는 시한까지 못박았다.

金대통령이 "지난해 12월 7일 약속한 사항" 으로 꼽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하나는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반도체 빅딜 등 7개 업종 빅딜의 마무리고 두번째는 5대 그룹이 주채권은행에 약속한 구조조정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라는 것이다.

빅딜은 그렇다치더라도 부채비율을 당장 어떻게 낮추라는 얘기냐는 반발에

대한 답이 바로 5대 그룹 계열사도 워크아웃 (기업개선작업)에 넣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은행이 출자전환 등을 통해 도와주게 하겠다는 것이다.

주력 계열사를 워크아웃에 넣으면 해당 그룹은 부채비율 축소에 대한 면죄부를 받지만 구조조정을 게을리할 경우 언제라도 채권단이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5대 그룹이 이같은 압박에도 버틸 경우 은행을 통한 제재는 재무약정에 반영돼 있다.

우선 주채권은행이 두차례에 걸쳐 약속이행을 요구한다.

그래도 말을 안들으면 신규 여신 중단 조치를 내리고 계속 시정하지 않으면 기존 여신 회수라는 마지막 단계로 넘어간다.

다만 재무약정에 명시된 제재는 이행실적 평가가 끝나야 발동할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에 아직 대통령 주재 점검회의가 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쓸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아무튼 대통령이 정부의 뜻을 분명하게 밝힌 만큼 공은 5대 그룹으로 넘어갔다.

26일 안에 반도체 빅딜을 비롯한 7개 업종 빅딜 협상을 끝내고 일부 계열사를 워크아웃에 넣든지 아니면 금융제재를 각오해야 하게 됐다.

금융계는 어느 그룹도 현재로선 금융제재를 견딜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에 조만간 5대 그룹 구조조정에 구체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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