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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어느 '폭력남편'의 하소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경찰서 유치장. 더부룩한 수염에 남루한 양복 차림의 50대 남자가 퀭한 눈빛으로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부인을 폭행한 혐의로 붙잡혀온 朴모 (53.광주시북구) 씨. "아무리 뜯어말려도 소용 없드랑께…. "

朴씨의 부인 金모 (47) 씨가 종말론 교회인 모 선교회에 빠진 건 89년부터. 건강식품 등을 납품하던 朴씨의 사업이 부도위기를 맞자 金씨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한두차례 그 선교회를 드나든 게 화근이었다.

이후 金씨는 오후 10시 선교회에 갔다가 오전 서너시쯤 귀가하는 등 점차 집안일은 뒷전이었다.

휴거 파문이 한창이던 92년 9월엔 큰 딸을 데리고 나가 선교회에서 한 달 반을 넘게 지내기도 했다.

朴씨는 93년 부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이젠 됐겠거니' 하며 요양 두 달만에 돌아온 부인을 간수하지 않은 게 그의 실수였다.

朴씨 몰래 낮동안 교회에 나가던 부인은 예전보다 더한 열성 신자가 되었다.

며칠씩 집을 나간 채 연락을 끊고 지낸 것만도 그동안 10여차례. 급기야 지난해 12월 朴씨가 부인을 찾아다니다 옥상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다리골절로 병원신세를 지자 金씨는 두 아이를 데리고 상경해버렸다.

선교회 본당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단칸방을 얻고는 딸과 아들을 인근 학교로 전학까지 시켰다.

그러나 신학기 들어 아이들이 학교에 출석한 것은 단 두 차례. "그놈의 종말론이 뭐간디 가정까지 뺏어가나요…. " 홧김에 부인을 폭행한 朴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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