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섹스, 현대인의 비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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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으로 뒤척이다가 마루로 나가서 심야 텔레비전을 켜면 대부분의 케이블 TV가 ‘연소자 관람불가’란 표시를 걸어놓고 섹스 영상물을 방영한다.

곽대희의 성 칼럼

세상의 남편들이 그것으로 흥분성을 높여 아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라는 뜻인가, 아니면 스트레스로 무뎌지는 성적 충동에 대한 자극제로서 일종의 ‘home therapy’인가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이런 방송들은 그전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던 ‘가정교사’나 ‘목구멍 깊숙이’, 심지어 ‘채털리 부인의 사랑’보다도 스토리 없이 단지 농후한 에로장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간과하기 힘든 측면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이런 포르노물의 발호가 역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생활 개선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한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세기 전반에 비해, 그 후반은 현대인의 섹스 횟수가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킨제이 연구팀의 조사 때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약 2200회가량의 성행위를 한 것에 비하면, 후반부 사람들은 그 두 배가 넘는 5500회 정도의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규명되었다는 것이다.

향상된 생활수준이 질적으로 좋은 음식과 스포츠를 제공해 준 결과 당사자의 정력이 강화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장이나 TV 광고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섹시한 포즈, 잡지에 공개되는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 그 밖의 인기 연예인들의 부적절한 남녀관계 등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휴면상태에 빠진 남자의 성 생리를 각성시켜 줌으로써 생긴 정상적 생리반응으로 건강한 컨디션의 반응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서 최근에는 의학의 도움까지 가세해 성생활을 부추기고 있다.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나 자이데나 등이 그 예인데 이런 약을 복용하면 한 시간쯤 지나 성기로 피가 유입되면서 발기가 준비되기 시작해 성교가 가능한 상태를 약 60분 동안 유지한 후 충혈상태가 소멸한다.

인위적인 흥분상태가 유지되면서 성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비록 의학의 도움으로 섹스 횟수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갈수록 이런 약과 의술에 도움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만큼 현대 남성들이 예전처럼 강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모든 신체 상태가 정상적인데도 발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신경성(neurotic) 장애라고 한다. 성적 흥분상태를 관장하는 시상하부라는 섹스 감독기관은 대뇌신피질과 대뇌변연계에 포위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 기관들은 각기 생각과 동작을 다스리는 중추신경이다. 이 두 상급기관은 시시콜콜 성중추를 간섭하는 점에서 시어머니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외부적 스트레스가 많아지면 남성호르몬 분비가 급감한다. 고환에서 제조되는 남성호르몬은 뇌하수체 호르몬의 조정을 받아 생산량을 증감하는데, 그것이 감산 쪽으로 지시를 내리기 때문이다. 개체의 생명보존이 생식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성의 운영에 필요한 성호르몬 생산을 자제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공포, 불안, 초조 따위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때 섹스는 불요불급한 행위라고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더 좋은 영양섭취와 더 작은 노동을 하는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보다 더 섹스를 못하는 것은 정신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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