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극한 감량, 자신을 죽여 루게릭 배역 살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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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은 “아직도 회복 중이라 식사량도 과거의 1/5 수준이다. 다음 작품을 할 때까지는 쉽게 종우에게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또 “준비과정에서 루게릭 환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영화를 통해 루게릭병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깊어졌으면 한다”는 바람도 밝혔다. [임현동기자]

‘강마에’ 김명민(37)이 돌아온다. ‘불멸의 이순신’‘하얀 거탑’‘베토벤 바이러스’ 등 드라마마다 명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독보적 연기력을 선보여온 그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박진표 감독)에서 루게릭 환자 종우 역을 맡았다.

루게릭병은 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인 채 전신이 마비되다가 죽음에 이르는 희귀병.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김명민은 20㎏를 감량하는 극한 연기에 도전했다. 최민식·송강호·설경구를 잇는 최고의 연기파로 꼽히는 그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0%도 자신 없었다”고 했다. 자신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극중 인물을 온전히 체화하는 ‘메소드 연기’로 유명한 그의 도전은 불면증 환자 역을 위해 30㎏를 감량한 크리스천 베일(‘머시니스트’)에 비견되고 있다.

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80㎝, 72㎏의 몸을 52㎏로 줄여 ‘피골이 상접했던’ 그는 촬영이 끝나고 3개월 만에 10㎏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표정에 “아직도 몸이 정상이 아니니 현실의 김명민과 극중 배역이 헷갈린다”고 했다.

‘내 사랑 내 곁에’ 출연은 ‘베토벤 바이러스’ ‘쫑 파티’장에서 제의 받았다. "막 작품을 끝낸 사람한테 찬물을 끼얹는 거였죠. 매니저에게 화를 냈어요. 루게릭병 환자를 하라니, 죽으란 얘기냐 했죠.”

루게릭병은 아직껏 영화화된 적이 없다. 지독한 투병과정을 연기해낼 배우가 없어서다. “감독님께 정말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상황이 제가 하는 것으로 흘러가는 거예요.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할까요.”

촬영기간 3개월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준비기간을 갖고 살을 빼는 게 아니라, 발병하고 나날이 병이 깊어져야 하는 거니까, 촬영 내내 계속 살을 뺐죠. 매일 1㎏, 0.5㎏씩 살이 내려야 했어요. 생방송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 같았죠.”

살 빼기는 극단적인 단식과 수면 줄이기로 이뤄졌다. “아무리 굶어도 잠을 자면 살이 안 빠져요. 하루 2시간 이상 못 잤죠. 그러니까 우울증이 오고, 우울증이 오니까 더 못 자고 더 못 먹었어요. 촬영 종료 열흘 전 감독님이 더 이상 빼지 말라, 죽을 것 같다, 하시더라고요.”

그런 극단적 고통 속에서도 정신을 놓지 않고 연기해야 한다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살이 빠지고 저혈당 등 이상상태가 오면서 정신을 깜빡깜빡 잃거나 사람을 못 알아보곤 했어요. 나중에는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배우에게는 몸짓·손짓이 표현수단인데, 그 모든 걸 차단당해야 했으니….”

애초 제작진은 더미(인체모형)를 제작하고 컴퓨터그래픽(CG)을 입힐 방침이었다. 그런데 그가 20일 만에 10㎏를 빼버리자 CG없이 실제로 가기로 했다. “CG에 의존하면 그건 진짜 연기가 아니죠. 제가 아픈 게 아니라 아픈 척 하는데, 어떻게 관객이 그 인물의 진짜 아픔을 느끼겠어요.”

그는 일주일에 이틀 쉬는 날에도 호텔에 파묻혔다. 가족과 연락도 끊었다. “커튼을 내리고 빛을 막아서 청소 아주머니가 편집증 환자일줄 알았대요. 처음엔 일부러 그랬지만 나중엔 저절로 빛이 싫어지던걸요.” 호텔은 지옥이었지만 촬영장은 천국이었다니 그 또한 아이러니다.

그는 “뭘 집어넣는 고통이 50이라면 그걸 꺼내는 고통은 200”이라고 했다. 종우와 헤어지는 지금도 그의 마음 속은 지옥일 터다. “배우는 매력적이지만 정말 고통스러운 직업이지요. 의사한테 경고받고 시작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건강회복 쉽지 않네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니 어쩔 수 없죠. 실제 루게릭 환자처럼 보여야 한다는 제 자신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너는 내 운명’‘그 놈 목소리’를 잇는 박진표 감독의 휴먼 드라마다. 죽어가는 종우와 그를 병상에서 지키는 아내(하지원)의 애틋한 투병일기다. 드라마에 비해 영화에서는 타율이 낮았던 그의 도전이 어떤 결과를 얻을지도 관심사다. 

양성희 기자 , 사진=임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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