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잡는 파이낸스 실태와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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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외환위기 이후 부실 은행.종합금융회사 등이 정리되는 틈을 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파이낸스' 업체가 서민을 울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파이낸스사들이 출자 (出資) 하면 연 20~35%의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서민을 유혹한 뒤 사주가 돈을 챙겨 잠적하거나 주먹구구식 경영으로 부도가 나 돈을 떼이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부산의 H사.S사.또 다른 S사, 전남 여수의 S사 등 네곳의 사주가 고객 돈을 갖고 달아났으며, 부산의 J사가 부도로 문을 닫아 드러난 피해규모만 약 70억원에 이르고 있다.

◇ 피해실태 = 주부 金모 (62.부산시금정구장전동) 씨는 지난 3월 13일 남편이 20년 동안 철도공무원으로 일해 모은 1천7백만원을 부산 H사에 맡겼다가 몽땅 날렸다.

몇달 전 연 27%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에 혹해 돈을 맡겼으나 이 회사 사장 전용식 (全溶植.40) 씨가 고객 돈을 모두 챙겨 잠적한 것이다.

金씨 외에도 60명이 이 회사에 1인당 5백만~2천만원씩 모두 10억원을 맡겼다가 피해를 봤다.

피해자 대표 柳모 (37.부산진구부암동) 씨는 "자본금이 40억원이고 계열사만 7개에 이른다고 선전해 안전한 금융기관인 줄 알았다" 며 "이자 몇푼 더 받으려다 피해를 봤다" 고 말했다.

퇴직금 등 6천만원을 맡겼다 날린 李모 (57.순천시인제동) 씨는 "돈을 맡긴 뒤 매월 일정액을 지급해줘 이자를 주는 은행의 예금인 줄 알았다" 고 말했다.

파이낸스사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연 40~50%의 이자를 지급하는 고금리의 피해를 보고 있다.

대전 D사에서 1백만원을 50일간 빌릴 경우 하루에 2만3천원씩 월 69만원을 이자로 지급해야만 한다.

◇ 문제점 = 파이낸스사는 자본금 5천만원이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는 상법상의 일반회사일 뿐이며 여수신 업무를 허가받은 정식 금융기관이 아니어서 감독기관도 따로 없다.

현재 전국에서 4백여 업체가 영업 중이다.

상당수 업체가 자본금 5천만~5억원으로 규모가 매우 영세,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대출하다 보니 경영상태가 부실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업체는 '확정금리 지급' '원금보장' 등을 내세우며 사실상 은행이나 다름없는 예금 유치를 하면서 투자자.주주 납입금 등 명목을 붙이는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맡긴 돈은 투자자금으로 간주돼 회사가 문을 닫으면 한푼도 못 건지게 된다는 것이 금융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이 상품전단 등에 싣고 있는 '원리금을 보장하는 여신전문금융기관' '25% 이상의 고금리 제공' 등의 내용은 공정거래법상 사실과 다른 내용의 표시, 광고를 게재해 투자자를 부당하게 유인하는 행위에 해당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재혁 (梁在爀) 삼부파이낸스 회장은 "고객들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투자하기 전에 회사 재무구조가 견실한지 꼼꼼히 따져 보는 수밖에 없다" 고 말한다.

[용어설명]

◇ 파이낸스사 = 주주들을 모아 기업 어음을 할인해주는 회사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신업무 등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주권을 정기예금 통장형태로 발급하면서 금융기관처럼 행세하고 있다.

정부의 예금보호 대상이 아닌 데다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다.

◇ 교통범칙금대행회사 = 6만~9만원 정도의 연회비를 받고 교통범칙금을 대신 내주는 곳. 하지만 약속한 범칙금을 받지 못해도 보상장치는 없다.

◇ 유사투자자문회사 = 투자정보를 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 하지만 장외주식을 알선하는 등 증권거래법을 위반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노인상조회 = 사망시 장례비 일체를 내준다며 매달 회비를 받는 일종의 공제회. 그러나 장례비를 제대로 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원금을 떼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발생 때 구제책은 없다.

이용택.박방주.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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