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美 미사일 아이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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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핵무기와 미사일의 관계는 말 (馬) 과 마차의 관계와 같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미사일과 핵은 연동 (連動) 된다.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확실히 패배한 김정일 (金正日) 체제는 핵과 미사일에 사활 (死活) 을 걸고 있다.

그것이 94년 제네바 핵합의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미사일협상은 핵협상 보다 더 까다로운 데가 있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과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 가입한 나라여서 북한의 핵개발은 원칙적으로 NPT와 IAEA가 정한 룰을 따라야 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는 국제적으로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다.

그야말로 주권국가의 권리행사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개발 포기를 달러로 사야 한다.

북한은 미사일 개발과 수출포기의 대가로 30억달러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을 수출해 벌게 될 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한 액수라고 한다.

30억달러는 북한이 실제로 미사일수출로 벌 수 있는 달러의 10배가 넘는 터무니없는 액수지만 미국은 알고도 속을 수밖에 없다.

94년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할 경우 북한을 공격하려 했던 미국이지만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북한을 공격할 수는 없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가져선 안되는 이유는 이렇다.

①미국의 중서부지역이 북한이 개발하는 대륙간탄도유도탄 사정권에 노출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②남북 또는 북.미관계 악화로 제네바합의가 깨지는 사태가 오면 북한은 94년에 중단했던 핵개발을 재개해 늦어도 3년내지 5년 안에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그게 대륙간탄도탄에 탑재되는 것은 소름끼치는 악몽이다.

③북한의 미사일개발은 동북아시아에 군비경쟁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지역안정이 깨진다.

④북한이 이란과 이라크 같은 중동국가에 미사일을 수출하면 미국의 중동평화구도가 깨진다.

⑤북한이 핵무기를 당분간 포기했다고 해도 가공할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중거리 이상의 미사일을 허용할 수 없다.

미사일문제의 최대 아이러니는 한.미간의 미사일 불화다.

한국은 한.미간의 모호한 합의에 묶여 사정거리 1백80㎞ 이상의 미사일은 개발할 수 없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다.

정통성 약한 정권의 굴복의 산물이다.

미국은 신의주까지 미치는 3백㎞의 미사일에 동의할 의사를 보이다가 투명성을 보여라, 수시사찰에 응하라는 등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와 한.미협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한때 한국에 미사일기술통제협약 (MTCR)에 가입하라고 요구하다가 입장을 바꿨다.

한국이 거기 가입하면 미사일관련 기술을 얻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북한 전체를 사정권에 넣으려면 5백㎞의 미사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우선 3백㎞의 미사일이라도 갖자고 하는데 미국은 1백80㎞를 고집한다.

북한과는 1만㎞의 대륙간탄도유도탄을 시야에 둔 협상을 하는 미국이 말이다.

미국의 그런 태도는 우스꽝스럽다.

북한이 대륙간탄도탄을 갖는다고 한국이 3백㎞나 5백㎞의 미사일을 갖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막강한 미사일 파워를 갖는 북한에 대해 이른바 부정 (否定)에 의한 억지력 (Deterrence by denial) 을 갖춰야 한다.

미사일 싸움에서 북한에 이기진 못해도 북한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를 주기에 충분한 미사일 파워를 갖춰 북한의 야심을 포기시키는 전략이다.

미국은 한국에 1백80㎞ 이하의 미사일을 강요함으로써 남북간 미사일의 절대적인 불균형을 고착시켜 북.미 미사일협상의 카드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미사일문제를 동북아시아 전략의 큰 틀에서 해결하고 싶다면 한국에 3백㎞의 미사일을 허용하는 데 주저할 일이 아니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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