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홍등가 여인들의 숭고한 장기기증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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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장기 (臟器) 기증운동을 펼치고 있는 인도 웨스트 벵골주 (州) 의 한 민간단체 '가나다르판' 은 지난 3월 중순 3백30여명의 단체서명에 환성을 질렀다.

신체를 손상시키면 환생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인도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체는 서명자들의 직업을 확인하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장기기증 자원자들은 캘커타시의 대표적 홍등가 (紅燈街) 인 소나가치 지역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인도에선 사창가를 통한 에이즈 감염문제가 심각하다.

인도 서부 뭄바이의 사창가 여성 에이즈 감염률은 45%다.

이 단체는 "환자들이 (창녀의) 장기를 기증받지 않으려 할 것" 이라며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서명을 주도한 소나가치 여성협력위원회 (MSC) 서기장 사다나 묵헤

르지 (39) 의 한마디에 그들은 숙연해지고 말았다.

"의학실험에라도 써주세요. 동물보단 저희 '인간' 의 장기가 더 도움이 될 겁니다. " '전직' 창녀 묵헤르지와 그의 단짝 만주 비스와스 (40)가 일종의 창녀노동조합인 MSC와 함께 한 지는 4년이 됐다.

묵헤르지는 12세, 비스와스는 13세 때 각각 일자리를 주겠다는 말에 속아 10달러.20달러씩에 소나가치로 팔려왔다.

이들은 포주들과 불량배들에게 강간당하고 하루 10여명의 손님을 받으며 악몽같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 번 돈의 80%를 뜯기고 반항하면 얼굴 등에 담뱃불 고문을 당하곤 했다.

그러던 지난 92년 스마라지트 자나 (46) 박사와의 만남은 인생전환의 계기가 됐다.

에이즈 실태연구를 위해 소나가치에 왔던 자나 박사는 이들의 비참한 실상에 충격을 받아 진료소를 차리고 눌러앉았다.

에이즈 방지운동인 자나 박사의 '소나가치 프로젝트' 를 도우면서 묵헤르지와 비스와스는 자신들의 인권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난 95년 이들을 주축으로 창립된 MSC는 이제 웨스트 벵골주 전역에 3만여명의 회원을 갖게 됐다.

이같은 활동을 통해 묵헤르지는 에이즈 방지운동과 '성 (性) 노동자' 의 권리를 주장하는 기수가 됐다.

비스와스는 스스로 문맹을 깨친 뒤 자나 박사의 진료소 앞 마당에서 창녀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요즘 또 하나의 결실을 꿈꾸고 있다.

MSC 연회비 50센트씩과 회원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 판매 수익금 등으로 현재 캘커타에 4층짜리 여성센터를 짓고 있는 것. 이 건물에는 창녀들을 위한 현대식 진료소와 아동보호시설, 그리고 재단교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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