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현장르포]사랑방 좌담 의원 경찰오자 줄행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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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7일 낮 12시40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신동아아파트 210동 5층. 이곳 보궐선거에 출마한 김의재 (金義在) 자민련.장경우 (張慶宇) 한나라당후보의 운동원과 감시단원들이 한데 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문 열어라" "네가 뭔데 들어가려느냐" 는 맞고함이 오가면서 양측 당원들은 주먹과 발길질을 주고받았다.

잠시후 5층의 한 아파트에서 문이 열리더니 자민련 허남훈 (許南薰) 의원이 걸어나왔다.

"여기 왜 들어오셨습니까?" 란 질문에 許의원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다가 "구역 예배보러 잠시 들렀는데…" 라고 해명한 뒤 8층으로 얼른 자리를 피했다.

소동은 許의원이 김의재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불법인 유권자 가택방문 (사랑방 좌담회) 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접수되면서부터. 한나라당과 선관위.경찰이 출동해 아파트 안에 들어가려 했지만 자민련측 운동원들의 저지로 충돌이 벌어진 것.

보궐선거 현장에서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이런 모습이다.

금배지를 달고서 각 당의 동 (洞).반 (班) 책임을 맡아 잠행 (潛行) 을 하는게 고작이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그런 초라한 국회의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현장에서 만난 여야의원들은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다.

"우리당 후보 당선도 좋지만, 열어놓은 임시국회를 팽개치고 구걸하듯 한표를 부탁하러 다니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합니다. " 27일 오후 2시 경기 안양시장 보궐선거의 합동유세장인 부림동 부안초등학교.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와 조세형 (趙世衡)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의 모습이 보였다.

유세장 뒤쪽에서 만난 한나라당 K의원과 국민회의 L의원은 "솔직히 눈도장이나 찍으로 나왔지" "총재가 직접 전화로 독려하는데 별 수 있나" 라고 어색한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유세장에 나온 李모 (34.부림동 거주) 씨는 "여야 지휘부가 국회에서 툭하면 싸우다가 선거때만 잔치상을 벌이느냐" 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여야 의원들은 대부분 강행군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권오을 (權五乙) 의원은 "과로로 병원신세까지 졌다.

이런 식의 동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고 토로했다.

국회의원 보좌관들도 현장에 엄청나게 투입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하루에 평균 60명의 보좌관이 동원되고, 국민회의는 거의 모든 보좌관을 시켜 각 지역 조직책들의 선거운동을 독려하고 리포트를 받아 검토해야 합니다. " 모의원 보좌관이 전해준 내용이다.

선거부정을 감시하는 선거관리위원이나 경찰들은 무기력하다.

서울 구로을 한 감시단속반원은 "재.보선만 되면 지옥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무기명 제보를 쫓다가 허탕치고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라고 털어놓았다.

시흥의 충돌현장에 출동한 한 경찰관은 "괜히 나섰다가 한쪽 편만 든다고 질책을 받기 일쑤여서 가능한 끼어들지 않으려 한다" 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유광종.이상렬.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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