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국정홍보가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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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홍보 (弘報) 는 널리 알린다는 말이다.

영어의 PR와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뉘앙스는 큰 차이가 있다.

PR는 곧 대외관계 (Public Relations) 를 의미한다.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고, 쌍방 (雙方) 통행식 커뮤니케이션 (의사소통) 이 그 생명이다.

일방적인 선전이나 홍보가 지나쳐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만 알린다' 는 비아냥도 생겨났다.

임기응변의 눈가림이나 과대포장이 국가나 정부 또는 거대기업을 곤경에 빠뜨리는 'PR의 재앙' 도 여기서 빚어진다.

지금 정부가 바로 이 '재앙' 에 빠져 있다.

홍보부족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진정한 PR의 부재 (不在) 탓이다.

95년에 작고한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나이스는 '일관된 원칙과 진실한 의도를 바탕으로 공중 (公衆) 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끌어내는 기술이 PR' 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그 의도와 추진과정이 분명치 못하고 기준이나 원칙이 왔다갔다 하면 PR는 불가능하다.

억지홍보의 '정치' 와 그에 따른 혼돈만 있을 뿐이다.

버나이스는 윌슨.후버.아이젠하워 등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PR는 물론 자동차왕 헨리 포드, 발명왕 에디슨, 무용가 니진스키, 전설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PR 자문에도 응했다.

세상이 다 아는 이들 천재에게 따로 무슨 PR가 필요할까만은 대중 앞에 이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더욱 사랑받게 하는 기술이 바로 PR다.

인도 정부가 의회민주제도 도입에 앞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PR를 그에게 자문하고, 히틀러의 선전장관 괴벨스도 'PR의 성경' 으로 불리는 버나이스의 1923년 저서 '여론의 합치 (合致) 과정' 을 항상 곁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개혁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그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야 할 '국민의 정부' 에 PR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권홍보와 언론통제라는 과거의 역기능 때문에 공보처를 없앤 것은 이해가 간다.

문제는 그 대안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관련부처들은 '복지부동' 으로 엎드려 있고, 부처간에 이해 (利害)가 얽힌 사안들을 정부 차원에서 조정.조율하기에 총리실 산하 공보실의 '그릇' 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대변인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언급하는 처지가 됐다.

청와대 대변인의 말은 곧 대통령의 의중으로 받아들여진다.

부처별 현안의 구체적 내용까지 청와대가 훤히 꿰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섣부른 언급이 논란을 불러오면 이 부담은 바로 대통령에게 돌아온다.

대통령과 국민을 연결하는 국정PR의 완충장치가 정부 안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현정부의 국정혼란과 행정의 난맥은 홍보부족 탓만은 아니다.

홍보는 부차적인 것이고 중요한 것은 국정의 알맹이다.

그저 그런 내용물을 포장만 그럴싸하게 한들 결과적으로 실망만 키울 뿐이다.

국정홍보의 효율화와 체계화를 얘기하기에 앞서 개혁의 큰 그림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투명하고 일관된 정책체계부터 갖추어야 한다.

공동정권의 정략적 이해와 내년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 때문에 큰 그림은 고사하고 부처 단위의 크고 작은 시책들까지 무시로 왔다갔다 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혼돈을 불러왔다.

대중을 상대로 한 'PR게임' 은 갈수록 과학화하고 있다.

대변인이나 공보관이라는 말 자체가 일방적 선전이나 관 (官) 냄새가 난다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내지 담당자로 직함들이 바뀐 지 오래다.

홍보물의 이해를 돕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석을 유도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스핀 (회전) 을 먹이는 '스핀 닥터 (홍보교정의사)' 도 등장했다.

홍보전담기구를 신설하지 않더라도 정부의 홍보기능을 체계화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 시절 공보처의 망령부터 떠올리는 현실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국정홍보처는 이름부터가 구태의연하고 관료냄새 또한 물씬거린다.

'정책홍보' 를 맡은 청와대의 김한길 정책기획수석은 "알맹이없는 홍보는 사기" 라며 '포장기술자' 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의 홍보관이 DJ정부의 국정홍보체계를 얼마나 바꿔놓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버나이스는 "언론사에 부탁이나 협조보다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상황을 창출하라" 고 권고했다.

여기에는 'PR의 과학' 과, 진실을 바탕으로 한 당국의 사회적 태도 및 행동이 중요하다.

언론사에 '협조요청' 을 남발하고, 매체관리의 '칼자루' 를 앞세워 일방통행식 접근을 되풀이한다면 이야말로 시대착오요, 본말 (本末) 의 전도다.

홍보는 합의형성에 긴요한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변상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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