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집음반 '가위손'낸 로커 임현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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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록을 지망하는 여가수는 적지 않지만 성공하는 여성로커는 가물에 콩나듯 한 것이 국내 현실이다. 여가수하면 부드럽거나 섹시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풍토에서 남성적인 느낌의 록은 그녀들에게 좀처럼 맞기 힘들어 보인다.

임현정은 그런 풍토에서 용감 (?) 하게 록으로 연속 음반을 내고있는 도전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곧 출시될 2집 '가위손' 재킷에 실린 그녀 얼굴은 두 손을 괸 채 뺨에 갖다대고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이것만 보면 그녀는 전위적인 록 뮤지션의 인상이다.

그러나 음반을 틀면 의외로 팝적인 선율의 듣기 좋은 곡들이 쏟아진다. 깊은 동굴을 통과하는 느낌의 첫 곡 '인트로' 를 지나면 바로 타이틀곡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에 도착한다.

도입부는 으깨진 기계음이 신음처럼 속삭이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그러나 선율은 곧 뉴웨이브풍의 아찔한 팝으로 이어진다. 익살맞은 스카풍 리듬이 흥겹고 조금 장난스러운 보컬도 신선하다.

그러나 음악 좀 듣는 사람이라면 다음 곡 '5월의 꿈' 이 더 마음에 들지 모른다. 박진감 있는 기타리프 위에 꿈과 체념을 왔다갔다하는 성인들의 심정을 설득력있게 담았다. 리얼한 맛 때문인지 남성 모니터들이 더 좋아한다는 설명.

또 "트로트 아냐?" 라고 할 만큼 복고적인 노래 '첫사랑' 도 있고 그룹 U2를 연상시키는 기타톤이 인상적인 '고백' 도 있어 음반의 무늬가 다양하다.

그러나 음반의 전체 이미지를 대변할 만한 곡은 음반제목과 같은 '가위손' 일 듯하다. 강렬한 기타 톤이 고딕건물처럼 어둡고 음침한 이미지를 풍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이상하게도 은근히 서정적인 내음이 감돈다. 영화 '가위손' 을 본 사람이라면 알 그런 맛이다.

"팀 버튼 영화를 좋아해 그 느낌을 사운드로 만들고 싶었어요. 겉은 차갑고 굳어있지만 속에는 정에 대한 주림이 많은 사람, 그 심정을 노래하려한 거죠. " 록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개 그렇듯 그녀도 러브송 대신 사회에 대한 조소와 풍자를 즐겨 노래한다.

또 하나의 관성이 아니냐는 물음에 "그런 의심을 받더라도 쓰고 싶은대로 써야 노래가 나온다" 고 받는다. 대신 노래 형식에선 기존 록의 관습에 도전했다고 덧붙인다. 보컬 - 기타 - 보컬식의 천편일률적 관습을 버리고 비대칭.불연속적인 곡 구성을 시도했다는 것.

서울예전 실용음악과 출신인 그녀는 94년 패닉의 이적과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하며 록보컬을 시작했고 97년 인디레이블로 첫 음반 '양철북' 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비틀스와 U2, 전인권을 좋아하는 그녀는 안정되고 대중적인 선율을 지어낼 줄 안다는 점에서 그 가수들을 닮았다.

노래 가뭄을 겪고있는 봄 가요계에 임현정 2집은 모처럼 신선한 음반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록 음반에서 여성보컬이 흔히 안게되는 기타.베이스 등 반주악기와의 조화문제 (남성이 99%인 반주자들은 대개 여성 록보컬의 톤에 익숙치 않다) 도 신윤철.방준석 등 실력파들의 능란한 연주 덕에 잘 해결된 편.

남성적인 기타 톤에 둘러싸인 여성 모던록 보컬이란 점에서 임현정은 자우림의 김윤아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며 그 때문에 김윤아와 이미지를 차별화해야할 과제를 안고있다.

묘하게도 둘은 절친한 친구사이. 음반수록곡중 '문 러버' 는 바로 김윤아가 지어준 곡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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