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만 사는 유령도시 될라” 청와대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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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겉으론 “어떠한 수정안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박선규 대변인)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공식입장에 불과할 뿐 내부 기류는 다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6일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현재 청와대가 확정적인 단일 수정안은 갖고 있지 않지만 ‘A안, B안, C안…’이런 식으로 이미 다양한 대안은 마련돼 있는 상황”이라며 “어떻게 하면 세종시의 자족기능을 높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대안들”이라고 말했다.

당초 원안대로 정부기관 중 9부2처2청을 세종시로 옮기더라도 다른 인구유입이나 고용창출의 요인이 없을 경우 공무원들만 모여 사는 ‘유령도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청와대 고민의 핵심이다. 즉 ‘행정도시’라는 컨셉트만으로는 2030년까지 인구 50만 명의 자족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가 검토 중인 대안 중 하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도시’를 세종시에 건설하는 방안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과학비즈니스도시를 유치할 경우 9부2처2청을 모두 이전하기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정보기술(IT) 관련 부처 등 과학분야와 관련 있는 부처만 옮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행정도시보다 과학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세종시의 미래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청와대 내에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과학도시로 바꾸는 대안과 관련, 청와대는 서울대의 일부를 세종시로 옮기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이 관계자는 “서울대 제2캠퍼스를 만드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IT융합센터나 바이오센터 등 연구시설과 일부 이공계 학과의 이전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경우 세종시에 ‘전진기지’를 마련하려는 대학들의 참여가 더 활발해지리라 본다”고 말했다.

물밑에선 이 같은 대안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청와대 내에선 이런 대안들의 존재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있다.

충청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종시의 기능 변경을 요청하거나, 정치권에서 공론화되기 이전에 청와대가 먼저 이슈를 제기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자칫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세종시 건설을 이명박 정부가 무력화하거나 후퇴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충청도민과 세종시 예정지역 주민들의 여론이 청와대의 마지막 선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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