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수입국 한국은 원화가치 강해야 장기적으로 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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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자원을 수입해야 하는 한국은 원화가치 강세를 유지해야 장기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통화가치의 약세로 수출 증대 효과를 보는 것은 잠시뿐이다.”

한때 ‘미스터 엔’으로 불리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사진) 와세다대 교수. 1990년대 일본 대장성 재무관으로 국제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했던 그가 한국에 ‘스트롱 원(원화가치 강세)’을 조언했다.

지난달 도쿄 시내의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일본인 답지 않게 직설적인 화법을 쓰면서 앞으로의 경제 예측을 들려줬다.

- 은행과 기업은 위기에서 벗어났는가.

“미국 금융 시스템은 지난해 사실상 붕괴됐다. 대부분의 투자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일단락된 것은 최근이다. 금융위기가 적어도 하락세는 멈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의 부동산 하락은 멈추지 않고 있다. 다만 그 폭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주택가격 하락이 완전히 멈춰야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본다.”

- 국제적으로 일본 경제의 역할이 역시 크다. 일본의 경기는 바닥을 쳤나.

“(손을 내저으며) 아니, 일본뿐 아니라 미국 경기도 바닥을 쳤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일본의 고용 상황이 아주 나쁘다. 실업률은 5.7%까지 치솟았고, 고용사정은 아주 나쁘다. 전후 최악이다. 지금 잠깐 좋아진 상황이지만 연말연초에 걸쳐 ‘더블딥’에 빠질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일본의 실업률은 금융위기 이전 4% 수준이었다.)

- 재정 지원은 경기대책으로 효과를 거뒀나.

“그걸로 지금 버티고 있는 거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환경 대응 자동차인 프리우스 등이나 일부 가전제품, 재정 보조금과 감세 덕분에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효과다. 재정 지원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 고용은 물론 임금 전망도 좋지 않다. 그럼 소비가 다시 침체할 수밖에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

- 증시가 활황에 가까운 반등을 보이지 않나.

“버블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각국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돈을 풀었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좋지 않다.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있다. 불황으로 갈 곳 없는 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 엔-달러 환율 전망은.

“달러당 90~100엔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다. 엔이 갑자기 크게 변동할 가능성은 없다. 달러가 특별히 강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강한 엔을 주장해왔는데 여전히 같은 견해인가.

“지금도 나의 지론이다. 과거에는 일본이나 한국은 낮은 통화가치에 힘입어 수출을 하던 구조였다. 그러나 자원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는 통화가치가 높아야 유리하다.”

- 그러나 한국은 다르지 않은가. 한국 기업의 수익이 개선된 것은 원화 약세 덕 아닌가.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통화가치가 높아져야 유리한 국면이 전개된다.”

- 한국 경제의 문제점은.

“세계 동시 불황이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여건은 상당히 어렵다. 일본은 한국보다 수출 의존도가 낮지만 세계 불황으로 크게 고전하고 있다. 일본도 어려운데 한국은 구조적으로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2000억~3000억 달러면 충분하지 않겠나. 일본은 1조 달러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춰 현재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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