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명약 찾는 美해양학자 윌리엄 페니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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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욜라에 있는 스크립스 해양학연구소. 이곳에서 새 밀레니엄 시대에 인간을 질병에서 해방시켜 줄 희망이 여물어 가고 있다.

윌리엄 페니컬 (58) 연구소장의 연구실은 마치 중세시대 주술사의 방처럼 온갖 기괴한 내용물을 담은 용기들로 가득하다.

매캐한 냄새가 진동해 연구원 이외의 사람들은 출입조차 꺼린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해양학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강의시간을 빼놓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그는 유기화학 분야의 권위자. 카리브해의 산호초 지역에서 채취한 각종 바다곤충.균류.박테리아 등을 갈고 끓이는 등 수십 종류의 실험을 반복한다.

암.백혈병 등 불치병의 치료성분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냄새나고 끈적끈적한 이름 모를 해양 채취물과 싸움을 벌인 지 벌써 20여년째. 해변에서 썩은 해초와 산호를 주워올 때 미친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흔들릴 때마다 그는 지난 28년 푸른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만들어 낸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를 떠올린다.

당시 아무도 곰팡이 따위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명약을 발견해 내리라고 상상치 않았었다.

서부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소년시절의 기억도 큰 위안이 된다.

그는 "약에 대한 질병의 면역성이 커진 반면 이에 대항할 항생물질의 발견이 저조하다는 사실은 인류의 종말만큼이나 경악할 일" 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항생제를 소화제 먹듯 남용하는 바람에 면역성이 강화된 '슈퍼 박테리아' 가 등장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페니컬 박사의 연구진은 플레밍 박사가 우연히 푸른 곰팡이에서 항생물질을 발견한 것처럼 '의외의 장소' 를 뒤져왔다.

쓰레기매립지.물탱크.습지.화학폐기물 처리장을 거친 뒤 연구진은 바다에 최종적으로 안착했다.

페니컬 박사는 "기존에 발견된 물질들을 연구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미지의 세계이자 무한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야말로 인류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 수 있는 곳" 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본격적인 해양탐사를 위해 스킨스쿠버까지 배웠다.

당초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의학계도 페니컬의 연구가 '제2의 페니실린' 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연구진은 이미 몇가지 놀라운 발견을 해냈다.

해초에서 소염물질을 추출했고, 산호에선 암세포의 세포분열을 방해하는 물질을 발견했다.

주목나무에서 유방암 치료물질을 추출했으며, 바다 곰팡이에선 일부 바이러스를 죽이는 단백질을 발견해냈다.

보트 바닥에 붙어 사는 미생물 '부굴라' 에서 추출한 물질은 백혈병 및 신장암 치료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추출물은 이미 일부 환자들에게 실험용으로 투여되고 있다.

페니컬 박사의 연구는 주변에도 자극을 주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의료진이 바다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국립 암연구소의 자연물질 연구팀이 연구중인 항암물질도 육지에서 얻는 것보다 바다에서 얻는 것이 더 많다.

페니컬 박사는 자신이 만든 해양추출물 의약품이 아직은 실험단계지만 조만간 미 식품의약국 (FDA) 의 승인을 받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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