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뉘엘 감독 유작 '욕망의 모호한 대상' 27일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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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 여자의 무기는 젊음과 미모 그리고 자신이 주장하는 '처녀성' 이다. 그리고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는 중년의 남자. 첫 눈에 여자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그는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 그녀때문에 안달한다.

루이 브뉘엘의 서른번째 장편영화이자 유작인 '욕망의 모호한 대상' 은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처절하기까지한 두 남녀의 욕망의 줄다리기를 보여준다.

해소되지 않는 성적 욕망과 소유의 강박을 이렇게 얄밉고 유쾌하게 그린 영화가 또 있었을까. 감질나고 한편으론 위험하기까지한 그들 사랑의 묘사엔 세상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노감독의 통찰력이 번득인다.

'1백년 영화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감독' 으로 불리우며 알프레드 히치콕과 마틴 스콜세지가 존경한 감독 루이 브뉘엘 (1900~83년) .친구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안달루시아의 개' (1928) 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획을 그었고 국내에는 카트리느 드뇌브 주연의 '세브리느' 로 잘 알려졌다.

매너좋은 중년의 신사 마티유 (페르난도 레이) 는 기차에서 우아한 처녀 콘치타에게 한바탕 물세례를 퍼붓고 관객들에게 두 사람의 '원수같은'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저택을 소유한 중년사업가와 하녀의 신분으로 만난 마티유와 콘치타. 마티유는 돈으로 환심을 사려하지만 콘치타는 그를 농락할 뿐이다. 처음부터 그를 사랑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첫날밤을 치르면서도 "나의 모든 것을 주면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것" 이라며 잠자리를 거부한다.

그녀는 철문밖에 그를 세워놓고 젊은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가하면 "당신을 시험해보기 위한 연극이었다" 며 매달린다.

성적 욕망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영화 전반에 배어있는 건 소유의 강박, 즉 집착에 대한 야유다. 돈으로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티유의 부르주아적인 환상, 남자에게 끝내 소유되지 않음으로서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콘치타의 몸부림. '욕망' 을 가리켜 '좌절의 다른 말' 이라고 말한 노감독의 위트는 그냥 나온게 아닐 것이다.

마티유와 콘치타의 관계는 새디즘과 매저키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알레고리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흥미로운 건 장면장면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엉뚱하고 코믹한 전개에 있다.

대문 철창을 통해 콘치타의 머리를 애무하는 마티유, 서로 물세례를 주고받은 두 남녀가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정한 부부처럼 걷는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를 보고나서도 오랫동안 웃음을 머금게 한 이 영화는 이렇게 묻고 또 묻게 한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일흔일곱살에 찍었을까?" 27일 개봉.

이은주 기자

※NOTE: '모호한 콘치타' - 주의! 콘치타 역은 케롤 부케와 안젤라 몰리나의 더블 캐스팅. 숙녀와 요부의 사이는 동전의 앞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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