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현 “날 키운 두산, 날 버린 두산, 날 살린 S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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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두산전에서 동점 투런 홈런을 날린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안경현. [연합뉴스]

김성근 SK 감독은 3일 잠실 두산전을 승리로 이끈 뒤 “안경현이 팀을 살렸다”고 말했다. 격세지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안경현(39·SK)은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200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SK 채병룡의 투구에 맞아 손가락 골절상을 입고 후배들을 독려하며 SK와 맞섰다. 당시 두산 선수들은 안경현의 등번호(3)를 모자에 새기고 ‘전의’를 불살랐다.

◆한 팀에서만 17년, 아쉬웠던 마지막 해=안경현은 1992년 OB(두산 전신)에 입단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꾸준함, 그리고 승부사적 기질로 베어스 팬을 매료시켰다. 2000년 라이벌 LG와의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1점 차로 지고 있던 9회 초 2사, 동점 홈런을 쳐내며 팀을 구해낸 장면은 두산 팬들 뇌리에 아직도 각인돼 있다. 두산 팬들은 그에게 ‘안쌤(안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선사하며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2008년 안경현은 ‘전력 외’ 판정을 받았다. 1, 2군을 오가며 51경기에만 나서는 설움을 겪었다. 98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오던 10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 기록이 중단됐다. 2008년 11월 25일 두산은 안경현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3억원 고액 연봉자에서 8000만원짜리 선수로=두산 구단은 안경현에게 ‘은퇴’를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구단 측은 “김경문 감독의 세대교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안경현이 다른 팀과 사인거래를 했다”는 말들이 구단 안팎에서 흘러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히 주전으로 뛰던 선수를 2군으로 보낼 까닭이 없지 않으냐”는 말도 붙여졌다. 펄쩍 뛰며 부인한 안경현은 “선수로 뛸 수 없다면 방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두산에서 나온 그에게 SK가 손짓을 했다. 입단 테스트를 거쳐 합격 판정을 받았다. 2008년 연봉 3억원을 받던 그에게 SK는 8000만원의 연봉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였다.

“두산에서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다. 1년을 뛴 선수라도 팀을 떠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17년을 한 곳에서 뛰었으니 어떻겠나”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SK로 와서 새롭게 야구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의 인연=SK에서 주어진 임무는 ‘백업’이었다. 그런 그에게 3일 경기는 반전의 계기였다. 친정 두산전 1-3으로 뒤진 6회 무사 3루에서 상대 홍상삼을 공략해 동점 투런포를 터뜨려 반전의 물꼬를 텄다. 안경현이 김 감독의 칭찬 세례를 받은 날 그를 아끼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에 내정됐다. 정 총리 후보자는 ‘공개적인’ 두산 팬이고, 특히 안경현의 열혈 팬이다. 그는 2008년 3월 교통방송(TBS) 일일 해설자로 나서 “두산 라인업에 안경현과 홍성흔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신구 조화가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올 텐데”라며 두산 측의 처사를 꼬집기도 했다. 안경현이 두산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뒤에는 ‘안경현 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안경현은 “너무 고마우신 분이다. 후원회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경현은 “한 경기, 한 타석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성원해 주시는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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