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30>영원한 향토시인 신석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0호 10면

한국 시단에서 신석정만큼 이름 앞에 많은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시인을 찾아보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서정시인’은 기본이고, ‘자연’ ‘전원’ ‘향토’ ‘목가(牧歌)’ 따위의 수식어가 그것이다. 신경림은 그의 저서에서 ‘목가적인 참여시인’이라는 생경한 용어로 신석정을 특화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런 많은 수식어만이 신석정의 시적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박두진은 신석정을 가리켜 ‘시의 사상적 깊이와 진폭에 있어서는 만해(한용운), 지용(정지용), 영랑(김윤식)을 능가한다’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수식어나 찬사보다도 ‘신석정 시인’ 하면 곧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향’이며 ‘향리’다.

그는 평생(1907~74) 고향인 부안과, 학교 교사직 때문에 여러 해 살았던 전주 일원을 별로 떠난 적이 없는 시인이었다. 그가 고향을 떠났던 것은 30년 불교계의 석학인 박한영 스님이 주재하던 조선불교중앙강원에 들어가 1년 남짓 불교 공부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동기생들이 금강산으로 입산수도하자고 제의하지만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듬해인 31년 ‘시문학’ 동인에 참여하기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도 3호에 ‘선물’ 등 몇 편의 시를 발표한 뒤 낙향한다. 그는 고향을 떠나서는 어떤 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때 고향에 돌아온 신석정은 부안읍 외곽의 뒤뜰이 넓은 초가집 한 채를 사서 ‘청구원’이라 이름 짓는다. 이때부터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에는 책을 읽거나 시작에 몰두하는 생활을 계속한다.

고향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독특한 성격 탓에 시단에서의 교유 범위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문학’ 동인에 참여했을 때 가까이 지냈던 김영랑, 정지용, 한용운, 이광수 정도였다. 중앙문단에 얼굴을 내밀거나 문인들을 찾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신석정을 만나고자 했던 사람들은 ‘청구원’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직 스무 살의 문학청년이었던 서정주가 불교중앙강원에서 공부할 때 신석정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의 작품들을 샅샅이 읽은 다음 ‘청구원’을 방문했던 일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날 밤 여덟 살 차이의 두 젊은이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서 동서고금의 시를 이야기하고 인생을 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단 교유의 범위는 극히 엷었지만 신석정의 가족 가운데는 시인이 두 사람 있다. 한 사람은 손아래 동서인 황해도 연백 출신의 장만영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맏사위인 전북 남원 출신의 최승범이다. 이들 세 시인은 모두 향리 출신으로 출생지에서 성장했으며, 그 출신 배경이 그들의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장만영은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생애 절반 이상을 서울에서 살았으며, 최승범은 전주에서 대학을 다닌 뒤 그곳에서만 살아왔다는 차이가 있다.

60년대 중반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내는 등 문단활동도 활발했던 장만영은 신석정에게 서울에 올라와 함께 살자고 여러 차례 권했지만 그때마다 신석정은 완곡하게 사양했다. 고향을 떠나는 일도 내키지 않았지만 그가 ‘천직’으로까지 생각했던 중·고등학교 국어교사직에 대한 애착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유달리 청소년을 사랑했고, 청소년에게 시를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행복했다던 그는 47년 시작해 72년 만 65세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줄곧 전북 일원의 대여섯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교단을 지켰다.

신석정이 세상을 떠난 뒤 장만영은 추모의 글을 통해 말년의 신석정이 서울에 자주 올라왔다고 회고했다. ‘그때마다 만나기는 했지만 너무 잡일이 많아져 그전처럼 다정할 수가 없었다’고 쓰기도 했다. 퇴직 후의 여유 있는 나들이일 수도 있었겠지만 중앙문단이 그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72년 ‘문화 포장’을, 73년 ‘한국문화예술상’을 받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73년 말 고혈압으로 쓰러져 6개월여 후에 세상을 등진 것도 말년의 번잡스러운 삶의 영향은 아니었을는지.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첫 두 연 젊었을 적부터 꿈꿨던 그런 고향, ‘그 먼 나라’를 과연 그의 생전에 찾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