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형식 깬 파격무대- 서울예술단'상생-비나리9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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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사이의 경계넘기는 공연계에서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적도, 때로는 선을 넘나들며 완전한 파격을 가해 본 적도 있었다.

오죽하면 크로스오버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을까. 하지만 가무악에서는 한번도 이런 시도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형식은 우리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것이기에 이를 다른 것과 섞을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가 (歌).무 (舞).악 (樂) 이라는 말 그대로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신명나는 한판이려니, 하고 생각만 할 뿐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아니, 별로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다.

뮤지컬이 폭넓은 인기를 모으고 있음에도 노래와 춤이라는 같은 요소를 갖고 있는 가무악은 왠지 구닥다리같은 냄새를 풍기면서 관객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지난 몇년 동안 이루어진 가무악 공연이 이름에서만 춤과 노래를 섞어놓았을 뿐 실제로는 소리 따로 춤 따로 식의 버라이어티 국악 한마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울예술단이 새로운 형식을 갖추고 4월 2일부터 10월 15일까지 (6월18.25일은 공연 없음,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상설공연을 펼치는 가무악 '상생 (相生) - 비나리99' 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작품이다.그리고 그 답안은 경계 넘나들기에서 찾고 있다.

가무악의 여러 예술요소를 한데 담고 있는 굿 형식을 원형으로 하되 우리 춤사위와 서양의 표현방식, 우리 음계와 서양음악을 아울러 동서양, 노소 (老少)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예술단은 전통예술의 제요소를 해체하면서 동시대 정서를 통합할 수 있는 가무악 형식을 만들어줄 연출가를 찾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견 연출가를 비롯해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젊은 연출가 등 4명에게 지난해 가무악 기획안을 요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일단 보류. 왜색이거나 기존의 연출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일단 오페라 연출가로 알려진 장수동씨가 연출을 맡았다. 굿현장을 돌아다닌 경험과 서양음악의 이해가, 새로운 가무악 형식 갖추기에 도움을 줄 것으로 서울예술단은 기대하고 있다.

안무는 올해 신임 무용감독으로 부임한 손인영씨, 음악은 원일씨가 맡았다.

부임 첫 작품인 이번 가무악에서 손감독은 전통춤의 기반 위에 머스 커닝햄 스쿨 등에서 현대무용을 익힌 안무가답게 전통 기반 위에 서양 표현법을 가미하겠다고 밝혔다.

내용뿐 아니라 이를 담는 그릇인 의상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기존의 한국무용 의상에서 벗어나 시대를 초월한 현대적 감각으로 관객의 시선을 먼저 붙들어두겠다는 전략이다. 서울예술단의 이번 상설공연이 어떤 결실을 맺는냐에 따라 내년 가무악 공연 일정을 조정할 예정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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