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노예출신이 인권운동가로…리복인권상 수상 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줄리 도그바드지 (25.여) .아프리카 가나의 서부 볼타지역에서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가 낮에는 중노동으로, 밤에는 성 (性) 노예로 지옥 같은 삶을 체험한 비극의 주인공. 지금 그녀는 같은 처지의 소녀들을 정상적인 생활로 인도하는 저명한 국제인권운동가로 성장했다.

그녀는 일곱살때 4페디스 (약 3백원) 를 훔친 할아버지의 죄값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토착종교 사원에 노예로 팔려갔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흔살인 사제의 성적노예로 시달려야 했다.

밭일을 게을리하거나 잠자리를 거부하면 어김없이 몽둥이가 날아왔다.

먹을 것이 없어 가축 먹이를 훔쳐먹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찾아오겠다고 약속한 부모들은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의 부모는 사원을 수차례 방문했으나 사제들의 방해로 딸을 만나지 못하고 문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 그녀는 당시를 "가족이 나를 버렸다는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충격을 받아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고 회상했다.

가나에서는 주술을 부리는 사제들이 어린 소녀를 끌어다 노동.성 노예로 이용하는 '트로코시' 란 악습이 남아 있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믿음이 통용되고 있다.

사원에 끌려온 지 3년째 되던 해. "평생을 노예로 보낼 수 없다" 는 생각으로 첫 탈출을 감행했다.

실패였다.

며칠 동안 매질을 당하고 어두운 토굴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때 당한 태형 (笞刑) 의 흉터는 아직도 등에 남아 있다.

열다섯살때 다시 탈출, 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 피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와 살면서 두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다시 붙잡혔고 짧은 결혼생활도 끝났다.

남편이 주술사들을 피해 도망가는 바람에 두 아이마저 노예신세가 됐다.

스물한살이 되던 지난 95년, 줄리 도그바드지는 두 아이와 함께 끝내 탈출에 성공했다.

96년 중부도시 아디도메로 이주, 인권단체들과 함께 자신이 겪은 어린 소녀들의 처지를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그녀의 활동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자 사원측의 집요한 방해가 뒤따랐다.

가족을 몰살하겠다며 협박도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지난해 6월 가나 정부로부터 '트로코시' 제도를 공식 철폐하겠다는 승복을 받아냈다.

덕분에 15개 사원에서 5백명 이상의 여성이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35개 사원에 1천여명의 여성이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트로코시의 완전 철폐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 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또 "나의 과거를 이해해주는 남자를 만나면 결혼도 하고 싶다" 고 수줍게 말했다.

줄리 도그바드지의 활동은 지난 3일 스포츠 용품업체 리복이 제정한 '99년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 리복인권상이란

리복은 지난 89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인권향상에 공을 세운 인물을 선정, 시상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도 이 상의 심사위원. 그녀는 오는 22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이 상을 받는다.

장정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