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도 과거 잘못 고백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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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국회 내의 진상규명 특위를 만들어 친일행위 등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 노무현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3부 요인, 여야 대표 등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있었던 8.15 경축식에서였다. 축사에서 드러난 노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이랬다. "애국 선열들이 목숨까지 내놓고 투쟁하던 그 시간에 민족을 배반하고 식민통치를 앞장서 대변했던 친일행위가 역사의 뒤안에 묻혀 있다"는 것이었다.

또 "독립투사와 후손들은 광복 후에도 가난과 소외에 시달리고 친일했던 사람들이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하면서 애국지사와 후손들을 박해하기도 했다"며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는 뒤집힌 인식을 지금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이 같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올바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반민족 친일파를 처벌하고 기득권을 박탈하거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상이라도 명확히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경축사를 준비하면서 노 대통령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국민의 강한 자신감 회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며 "자신감 회복을 위해선 이 같은 분열의 역사에 대한 근원적 치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분열과 갈등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고 화합.포용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왜 진실을 밝히는 일에 대립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 그 토대 위에서 용서.화해하는 게 진정으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국가기관도 용기있게 '과거의 잘못'을 고백해 올바른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해법을 제안했다. 국정원과 국방.행자.법무부와 경찰 등 과거 권력기관의 '고해성사'를 제안한 셈이다.

열린우리당.민노당은 환영했지만 한나라당은 "아직도 국정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여옥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갈등을 시사하는 어두운 먹구름을 드리웠다"면서 과거사 특위 구성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선 "벙어리 외교"(박진 의원)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우전 광복회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국가가 혼란스럽고 진보와 보수로 국민의 편이 갈리고 있어 참으로 한탄스럽다"며 "대통령도 상생의 큰 정치로 국민적인 큰 기대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기념식 참석 후 노 대통령이 참석한 다과회에는 불참한 채 곧바로 상경했다.

최훈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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