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단란주점에 간 농촌개선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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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9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42조원을 투입해 진행된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이 부실덩어리였다는 감사원의 특별감사결과는 또다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농.축협비리에 연속된 부실실태 보고서로 국민들의 농정당국에 대한 신뢰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과연 앞으로 농정당국이 농업정책사업을 온전히 펴나갈 수 있을지 짙은 우려가 앞선다.

감사원의 발표를 보면 농어촌 구조개선자금은 곳곳에 구멍이 뚫린 임자 없는 돈이었다.

특히 농업인후계자 5만4천여명중 14.3%인 7천7백여명이 선정기준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이 중 1백5억원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6백6명은 자금을 받은 뒤 영농을 포기하거나 일부는 단란주점. 카페. 주유소 등을 경영했다는 사실은 이런 요지경이 따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에 비효율적인 사업비 배정은 물론 가짜영수증이나 허위거래 명세표 등을 이용, 사업비를 부풀려 지원금이나 보조금을 빼먹는 일도 다반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경남 등 4개 도의 감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전체로는 훨씬 더 비리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감사결과는 사실 우리의 농정현실이 안고 있던 누적된 문제점이 드러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정책사업의 경우 큰 문제는 사업시행에 앞서 여건분석이나 자금수요계획 등을 제대로 마련치 않은 채 지역별로 일괄 할당, 졸속 시행한 데 있다.

행정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중앙에서 정책만 세우면 그대로 집행되리라는 탁상행정의 결과인 것이다.

여기에 농민들의 경영의식도 떨어져 생산만 늘린 결과 유통과 판로를 도외시해 오히려 빚더미만 늘린 결과가 많았다.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의 비리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중앙일보는 96년 11월말 집중취재를 통해 이를 보도했었으며 검찰도 지난해 9월 농어민기금관리를 단속 발표한 바 있다.

강운태 (姜雲太) 당시 농림부장관은 중앙일보 기사에 대해 허위보도라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까지 했다.

농림부는 姜장관이 물러난 뒤 슬며시 소 (訴) 를 취하했지만 실책을 저질러 놓고도 책임은 지지 않는 관료의 전형적 행태를 보여준 것이다.

농업지원자금이 제대로 쓰이려면 농어민들의 뚜렷한 목적의식과 공무원들의 강한 책임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2004년까지 45조원이 투입되는 2단계 농업.농촌 투융자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철저한 경쟁원리와 경영마인드가 없인 농업투자도 효율을 기대할 수 없음을 정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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