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67> 생활 속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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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불교의 경전은 팔만사천에 달합니다. 어마어마하죠. 그걸 270자로 요약한 게 『반야심경』이죠. 그래서 부처님 법의 골수가 『반야심경』에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반야심경』도 딱 여덟 자로 요약할 수가 있죠. 그게 뭘까요? 맞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입니다.

그런데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색은 뭐고, 공은 또 뭐야?”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주로 이런 반응이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더 황당하게 여기죠. “역시~불교는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잖아.”

과연 그럴까요. 살아있는 물고기를 손에 쥐면 어떻게 되나요? ‘펄떡펄떡’ 뛰죠. 마찬가지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펄떡펄떡 뛰면서 ‘슉슉’하고 숨을 쉬는 말입니다. 살아있단 말이죠. 이제 두 손으로 그 ‘물고기’를 잡아보세요. 그리고 나의 일상을 향해 ‘휘~익!’ 던지세요. 지지고 볶는 일상 속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들여다볼까요.

#풍경1 : 먼저 ‘색즉시공’입니다. 바쁜 아침 출근길, 옆차가 느닷없이 끼어들죠. “빠~앙!”하고 경적을 울립니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죠. 그 화가 ‘색(色)’입니다. 그런데 색을 붙들면 항상 나만 괴롭죠. 게다가 ‘옆차도 분명 급한 이유가 있겠지’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밟고 양보를 해줍니다. 순간 화는 사라지고 말죠. 어디로 갔을까요.‘공(空)’으로 들어간 겁니다. 색이 공이 되는 순간이죠. 그게 ‘색즉시공’입니다. 컴퓨터로 따진다면 일종의 ‘포맷’이죠.

이제 질문이 들어오겠죠. “왜 포맷을 해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죠. 화가 난 마음을 계속 붙들면 어찌 될까요. 회사에 가서,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할 때까지 ‘아침의 짜증’을 안고 있다면 ‘색즉시공’이 될 수가 없죠. 왜일까요? 내가 계속 ‘색’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색’이 쌓이고 쌓여서 나의 업(業)이 되는 거죠.

그래서 ‘툭! 툭!’ 내려놓는 겁니다. 출근길의 짜증뿐만 아니죠. 칭찬 후의 뿌듯함도, 이별 뒤의 아쉬움도, 성공한 뒤의 자만심도 ‘툭! 툭!’내려놓는 거죠. 그렇게 마음이 포맷될 때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출렁이는 창조의 바다로 다시 들어가는 겁니다.

다시 볼까요? “탁!”하고 화를 내려놓는 순간을 들여다보세요. 더 이상 ‘옆차’에 마음이 묶이지 않게 되죠. 그래서 공간이 생기는 겁니다. 이젠 어떠한 마음도 일으킬 수 있는 창조의 공간이 내 안에 생기는 거죠. 그렇게 포맷한 마음의 자리가 ‘공(空)’입니다.

#풍경2 : 그럼 ‘공즉시색’은 뭘까요. 간단합니다. 공(空)이 색(色)으로 화(化)하는 거죠. ‘지지고 볶는 마음’이 아니라 ‘포맷된 마음’에서 생각과 행동을 내는 거죠. 거기에는 출근길의 짜증, 남편과의 말다툼,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난 실망감 등으로 인한 연쇄 파도가 없습니다. 짜증의 연장선이 아니라 내게 정말 필요한 마음을 골라서 쓰는 거죠. ‘오늘 회의에선 어떤 아이디어를 낼까?’‘올 추석 부모님 선물로 뭐가 좋을까?’‘어제 다퉜던 직장 동료에게 어떻게 사과하지?’

결국 출근길의 생산성이 달라지는 겁니다. 출근길뿐만 아니죠. 나의 하루, 나의 일상, 나의 삶에 대한 생산성이 달라지는 거죠.

온갖 색깔과 모양으로 마음을 그리고, 다시 백지로 돌아가고, 다시 마음을 그리고, 다시 백지로 돌아가고. 그렇게 창조와 포맷, 창조와 포맷을 거듭하며 마음을 굴리는 일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자연을 보세요. 저 앞의 나무와 새, 바람과 구름, 산과 들도 매 순간 색으로, 또 공으로, 색으로, 또 공으로 몸을 바꾸며 존재하죠. 그래서 여름이 간 자리에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간 자리에 겨울이 오는 겁니다. 이 거대한 우주가 그렇게 숨을 쉬는 거죠. 그 호흡법이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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