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서 물러난 정세영 전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포니 정' 이 현대자동차를 떠난다.

정세영 (鄭世永) 명예회장의 지난 30여년 삶은 현대자동차의 성장사와 궤를 함께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7년 현대자동차 설립때 사장직을 맡은 이후 96년 1월 자신의 장남인 정몽규 (鄭夢奎) 씨에게 자동차 회장직을 넘겨주고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설 때까지 최일선에서 진두 지휘하며 현대차의 오늘이 있게 한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현대차의 첫 독자모델인 '포니' 의 개발 성공으로 그는 국제적으로 '포니 정' 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지난 86년에는 미국시장 첫 수출에 나서 선풍을 일으키면서 '엑셀' 신화를 창조하는 등 비단 현대차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鄭회장은 처음에는 경영인이 아니라 학자를 꿈꿨다.

그가 현대와 인연을 처음 맺은 것은 지난 57년. 당시 29세의 나이로 미국 마이애미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교수를 꿈꾸며 공부하던 중 형 (鄭周永명예회장) 의 부름을 받고 급거 귀국, 현대에 들어가면서부터. 鄭회장은 나중에 측근들에게 "그때 공부를 하는 건데" 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후 60년부터 67년까지는 현대건설 상무를 지냈으며 67년 자동차로 자리를 옮긴 이후 대부분을 자동차와 함께 보냈다.

특히 그는 인영.순영.상영씨 등 형제들이 분가해 회사를 따로 경영할 때도 끝까지 형과 함께 현대그룹을 이끌어 왔다.

그는 또 현대그룹으로서 위기와 시련기라 할 수 있는 87년에는 대권 도전에 나선 형을 대신해 현대그룹 총수직을 맡아 96년 1월 조카인 몽구 (夢九)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줄 때까지 화목과 내실 경영으로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자동차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그룹 회장직을 떠남과 동시에 몽규씨에게 자동차 회장직까지 넘겨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도 "가능한 한 현업에 간섭하지 않겠지만 회사가 잘 안된다면 나서겠다" 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이때도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동차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97년 우리나라가 환란을 맞기 전부터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해이해진 근로정신을 추슬러야 한다" 며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검소하고 근면한 생활자세를 견지해 옴으로써 모범적인 경영인으로 인정받아 왔다.

지난해에는 경비절감 차원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차진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