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3억 인민 제목소리 낸다…5일 전인대회의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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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일 베이징 (北京) 시청 (西城) 구 시자오민샹 (西郊民巷) 의 작은 길. "라오바이싱 (老百姓.일반인) 의 출입을 왜 막아. " "아저씨, 당분간은 안돼요. " 한 중년남자와 앳된 얼굴의 무장경찰간에 작은 승강이가 벌어졌다.

중년남자가 성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데 비해 무장경찰은 거의 사정조다.

시자오민샹은 인민대회당의 옆거리. 3일과 5일 각각 개최되는 전국정협회의 (政協) 와 전국인민대표대회 (全人大) 를 맞아 무장경찰이 일반인의 출입을 일시 봉쇄했다.

정협.전인대 참석차 각지에서 올라오는 대표들을 보호하기 위한 연례적 조치다.

인민대회당 앞 천안문 (天安門) 광장도 사복 차림의 공안 (公安) 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중앙정부에 탄원하러 올라온 지방주민들의 집단시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시내 곳곳에선 검문이 이뤄지고 있다.

매년 3월초 열리는 정협.전인대 때 늘 있는 풍경으로 '베이징의 봄은 검문과 함께 온다' 는 우스갯소리를 낳았을 정도. 그러나 올해는 예년에 볼 수 없던 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민초 (民草) , 즉 '라오바이싱' 들이 경비를 상대로 핏대를 올리며 자기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쓰촨 (四川) 성의 부윈 (步雲) 향 (鄕)에선 농민들의 '선거혁명' 이 일어났다.

6천2백여 농민들이 한국의 면장에 해당하는 향장 (鄕長) 급 이상은 헌법상 직선으로 뽑을 수 없는 규정을 무시한 채 '세금을 감해주고 면의 경제를 일으킬 인물을 뽑자' 며 향장 직접선거를 강행한 것이다.

과거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중국 지도부는 최근 격론끝에 부윈향 선거를 묵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선전기관' 이던 언론사에도 변화가 밀어닥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중국 당국의 입장과는 정반대인 '위안 (元) 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깜짝 놀란 주룽지 (朱鎔基) 총리와 다이샹룽 (戴相龍) 인민은행장이 나서서 "위안화 절하는 없다" 고 외친 뒤에야 간신히 파문을 막을 수 있었다.

거세지는 라오바이싱의 목소리는 이제 의회성격을 띤 전인대에도 밀려들었다.

5일 열리는 제9기 전인대 2차 전체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표들간의 자유토론이 중국 당국에 의해 허용된 것이다.

1일자 차이나데일리지는 '올해 전인대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자유토론' 이라고 지적했다.

전인대는 그동안 당이 결정한 사항을 비준하는 거수기 역할에 머물러 서방언론으로부터 '고무도장' 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2천9백78명이나 되는 대표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토론을 벌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다른 목소리' 가 나온다는 자체가 중국에서는 획기적이다.

朱총리의 첫 정부공작보고.헌법개정.국방비증액 예산안 등에 과연 얼마나 비판이 쏟아질지 주목된다.

라오바이싱의 진정한 대변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전인대의 신선한 변화가 전세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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