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개혁정책 총체적 혼선 거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당의 개혁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60세를 목표로 했던 교원정년 단축이 우여곡절 끝에 62세로 후퇴했고, 국민연금 확대 실시가 혼선을 빚더니 이번엔 의료개혁의 꽃이라는 의약분업이 1년 이상 연기됐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가 예고됐음에도 안이한 대처로 현 정권의 '역작 (力作)' 으로 내세우던 노사정위의 존립위기를 맞게 했고, 한자 병기 (倂記) 문제도 사전협의 없이 불쑥 발표해 논란을 자초했다.

여당이 국회에서 단독 변칙처리한 규제개혁법안은 "개혁취지가 손상됐다" 며 정부가 재입법안을 제출하는 자기부정의 모습도 드러냈다.

내년 4월 총선까지 얼마나 많은 개혁시책들이 손발 안맞는 당정과 졸속행정, 여당의 정치논리 때문에 허사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당의 급작스런 의약분업 연기방침은 당정이 불과 1주일 전인 18일 회의에서 '예정대로 실시' 를 합의한 데다 24일 보건복지부의 청와대 업무보고때도 이를 확인한 바 있어 국정난맥이란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특히 의약분업 실시는 새 정부가 사회분야 1백대 개혁과제로 선정해 놓고 추진하던 사안이다.

국민회의는 준비부족으로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김원길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26일 "의약품 분류와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홍보부족 등 전반적으로 준비가 부족해 연기가 불가피한 실정" 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의약분업은 지난 94년 한.약 분쟁과정에서 개정된 약사법에 따라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준비해온 사안이다.

또 아직 시행까지는 4개월 이상 시간이 남아 있어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조차 자신하고 있다.

때문에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시행 초기과정에서의 혼란과 불편이 자칫 국민연금 파동 같이 초대형 악재로 작용할까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의료계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아예 총선 이후로 불씨를 넘기자는 계산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담당 상임위의 사정도 감안됐다고 한다.

국민회의의 한 정책 관계자는 "현재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 16명 중 3분의2 이상이 시행연기를 주장하고 있는 상태" 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국회에 시행연기를 청원한 대한의사협회와 약사회는 보건복지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의.약사 출신 의원들을 상대로 맹렬한 로비를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가운데 의약분업을 1년반 연기하는 약사법 개정안도 25일 제출된 상태다.

그런 만큼 당으로선 제2의 '교원정년 파동' 가능성을 우려했음직하다.

어쨌든 여당은 이익단체의 압력과 선거를 의식해 개혁정책을 후퇴시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