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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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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본인은 보수적이어서 체제를 크게 바꾸는 일에는 겁을 먹고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2006년의 한 인터뷰에서 당시 일본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한 말이다. 아무리 자민당이 미워도 투표장에선 결국 표를 주고 마는 일본 유권자들의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오자와가 1993년 자민당을 박차고 나와 정권교체를 주창한 건 무모함에 가까웠다.

자민당에 남았더라면 손쉽게 총리가 되고도 남았을 그가 굳이 힘든 길을 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손쉽게 얻는 권력보다 쟁취하는 권력을 원했던 싸움꾼적 기질이 동했을 수도 있고, 자신의 개혁 노선을 거부한 자민당 원로들에 대한 복수심도 마음 한구석에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정치 철학에 있었다고 본다. 93년 자민당 탈당 직전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던 『일본 개조계획』에 씌어진 그의 철학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다지 바뀐 점이 없다.

오자와는 일본에는 진정한 정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국회와 정치인은 고도 성장이 가져다준 과실을 서로 어떻게 나눠 먹는지를 정하는 일에만 급급할 뿐이다. 다수결보다는 만장일치가 미덕으로 통용되다 보니 여당은 야당의 눈치를 보느라 결단을 못 내리고, 권력 의지가 없는 야당은 여당이 베푸는 시혜에 안주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민당은 반영구 집권당이 됐고 일본은 관료가 만든 각종 규제장치로 돌아가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정권교체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듦으로써 비로소 일본을 개조할 수 있다고 주창했다. 오자와가 소선거구제 도입에 그토록 목을 맨 이유다.

엊그제 일본 총선이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정권교체의 일등공신 오자와의 모습을 담은 보도 사진들 중에는 파안대소하는 장면과 함께 눈물을 훔치는 장면도 있었다. 왜 아니 그랬으랴, 16년 비원이 비로소 실현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정치자금 스캔들의 여파로 그는 비록 총리직엔 오르지 못하지만, 자신의 계파 의원 120여 명의 힘을 바탕으로 일본을 좌지우지하게 됐다. 그가 『일본 개조계획』에서 내건 개혁 과제들은 이제 여당이 될 민주당의 정책 공약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유엔 평화유지부대 창설 등이 그 예다. 앞으로 일본의 가는 길을 알려면 16년 전 51세의 오자와가 쓴 『일본 개조계획』을 다시 꺼내 읽는 게 빠른 길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