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동물적인 전투감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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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예선 결승] ○·후야오위 8단 ●·김지석 5단

제7보(80~97)=△는 두터운 수다. 누가 봐도 명백하건만 이 수가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는 ●의 빵때림을 유발해 흑을 두텁게 했고 ▲의 패를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놀랄 일이다. 패를 질 경우 하변은 또 한 번의 가일수가 필요하다. 결국은 A에 두느니만 못하게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후야오위 8단은 △를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당당하고 힘찬 수가 비난받는다면 바둑이란 도대체 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이게 현대 바둑이다. 제아무리 폼이 좋아도 능률에서 떨어지면 바로 빛 좋은 개살구 신세가 된다.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으면서 처절하게 현실적인 현대바둑의 모습이다.

김지석 5단은 81에 팻감을 쓴다. 손길이 가볍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이곳엔 손해는 하나도 없는, 그래서 기분이 마냥 좋은 4개의 팻감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얌전하던 후야오위도 이번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그는 84에 이어 90으로 끊으며 강력하게 패를 버티고 나왔다. 게다가 96, 이 수도 팻감이 되나? 받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흑은 이제 B의 팻감이 마지막 ‘총알’이다.

김지석은 약간 당혹한 모습이다. C로 빵 따내도 대마가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상변 백집이 크게 굳어지고 나아가 좌상 흑 두 점이 사경에 몰린다면 바둑은 그냥 지고 만다. ‘싸움꾼’ 김지석은 거의 반사적으로 97로 붙여갔다. 공격당하기 전에 선제한다는 동물적인 전투 감각이다. (83·86·89·92·95=패 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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