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국기업 솔직해졌다"뉴욕설명회 호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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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2일 (현지시간)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개최한 한국 경제 설명회 (로드쇼)에서 민간 기업인들이 맹활약, 현지 투자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국내 5대 그룹 등에서 파견된 이들은 모두 그룹내 '간판급 해외통' 으로, 한결같이 능숙한 영어와 세련된 매너로 소속 그룹의 구조조정 성과와 향후 추진계획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투자자들의 질문공세에도 매끄럽게 대처했다. 이른바 '빅딜' 을 둘러싼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듯 서로 미묘한 신경전도 전개했고, 일부 민감한 사안을 놓고 설전도 벌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히려 "한국 경제의 변화상과 역동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발렌스넬라 캐피털의 도널드 크뢰거 투자고문) 는 반응이 많았다.

반면 정부측 대표들이 진행을 맡은 설명행사에서는 계속 통역이 동원되고, 설명자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떨리는가 하면, 투자자들의 질문에 대해 성의있는 답변이 이뤄지지 않아 (모 투자사 코리아데스크 K씨) 상대적으로 기업인들의 역할은 더욱 빛났다.

이경훈 (李景勳) (주) 대우 사장은 "사외 (社外) 이사를 더 많이 활용할 계획" 이라고 설명하면서 "관심있는 분은 전화를 달라" 고 조크, 좌중을 한바탕 웃겼다.

황영기 (黃永基) 삼성생명 전무는 처음 설명한 이종석 (李鍾奭) LG 구조조정본부 부사장과 李사장, 그리고 자신이 브리핑하는 위치 및 자세가 달랐던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 기업의 다양성을 잘 나타내주는 한 예" 라고 말했다.

이어 설명에 나선 박종섭 (朴宗燮) 현대전자 미국법인 사장은 "나는 삼성과 같은 자세로 브리핑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삼성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며 "우리 현대는 아주 특색있는 (unique) 기업" 이라고 말해 장내를 다시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최의종 (崔義宗) SK 구조조정추진본부 부사장과 정인용 (鄭寅用) 한진그룹 고문도 '정열적으로' 브리핑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어 질의.응답에서는 한 투자자가 "삼성이 대우측에 삼성차 모델인 SM5를 계속 생산토록 요청한 이유가 뭔가" 고 묻자 黃전무와 李사장이 한바탕 격돌 (?) 했다.

黃전무는 " (잘 팔리는 제품인) SM5를 당분간 더 만드는 것이 기존 투자에 대한 손실을 줄이고,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 이라고 말한 뒤 "대우측도 할 말이 있을 것" 이라고 바통을 넘겼다.

그러자 李사장은 "SM5는 구형 모델이고, 레간자와는 경쟁차종" 이라며 "삼성은 (계속 만들어도) 팔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팔 자신이 없다" 고 되받았다.

이같은 설전 (舌戰)에 대해 팬 아시아 파트너스 투자사에서 왔다는 한 여성 투자자는 "자연스럽고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면서 "한국이 확실히 변하기는 변하는 모양" 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설명회에서는 이밖에도 ▶엔저가 한국 경제 회복에 미칠 영향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처리문제 ▶컴퓨터 2000년도 인식 오류문제 (Y2K)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처상황 ▶과잉.중복투자 해소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이 투자자 및 언론 관계자들로부터 쏟아졌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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