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미국의 고민]햇볕론 공조 저울질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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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워싱턴을 방문했던 임동원 (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 샌디 버거 백악관 안보비서관 등 미 정부의 핵심 북한담당 고위관리들을 만나 '나무보다 숲을 보는' 포괄적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반도 냉전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근원적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그 논거였다.

林수석의 논리에는 북.미수교 등 대북관계 개선을 서둘러 달라는 주문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한 워싱턴내 북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결같지 않다.

긍정적인 측면도 물론 있으나 우려할 만한 요인도 있다는 것이다.

◇ 긍정적 측면 =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의혹 시설과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워싱턴내 대북 분위기가 냉랭해졌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뢰감이다.

아놀드 캔터 전 국무차관은 "김대중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 이 처음엔 순진한 (naive) 느낌을 풍겼으나 지금까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이젠 현명한 (sensible) 정책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고 말했다.

특히 대북정책에서 오락가락했던 김영삼 (金泳三) 정부와 비교하면 달라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미국내 분위기다.

이같은 신뢰감은 현 한국의 대북정책이 부분적으로나마 북측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데에도 기인하고 있다.

특히 현대 등 한국기업의 대북투자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다.

미 국방대학 전략문제연구소 제임스 프리스텁 선임연구원은 "미 정부가 북한 김정일 (金正日) 을 면담하려다가 실패했으나 이를 한국의 기업인이 해냈다" 며 "이는 미국의 외교정책보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의 노력이 오히려 효과적이란 증거" 라고 지적했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대사도 "한국기업의 대북투자가 본격화되면 대북 경제제재는 더이상 미국의 외교적 지렛대가 될 수 없다" 고 강조했다.

이런 미국내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은 클린턴 정부엔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같은 지지 분위기가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방차관보는 "북한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포괄적 접근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있다" 며 "문제는 미국이 한국 정부만한 합리적 구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고 꼬집기도 했다.

◇ 부정적 측면 =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차원에서 주로 부정적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다.

林수석을 비롯, 2월초 한국 국회사절단 등 한국측 워싱턴 방문객에게 미 의회측 인사들이 한결같이 질문을 던진 게 바로 이 대목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미.북 수교가 현실성 있고 실효성이 있느냐의 여부와, 미사일 발사로 대표되는 북한의 무력시위를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있다.

마이클 아마코스트 브루킹스연구소장 (전 주일대사) 은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비합리적 전제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미 정부가 주도해 대북관계를 정상화하라고 하는 주장은 적어도 미 의회에 먹혀들지 않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대북 억지력 측면에서 보면 이같은 견해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아미티지 전 차관보와 윌리엄 오돔 장군 (전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 은 대북 포괄접근과 함께 강력한 군사억지력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돔 장군은 "경우에 따라 91년말 부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면철수한 한반도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다시 반입하고 한반도 근해에 미군 병력을 증파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물론 이처럼 보수견해를 가진 이들조차 한국 정부가 반대한다면 미 정부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좋은 역' 만 맡으려고 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핵.미사일 확대를 철저히 억제하려는 미국과의 입장에서 균열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한.미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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