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韓重민영화 '역설의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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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공기업 민영화의 시금석이 될 한국중공업의 민영화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

당초 지난달 말까지 주식 51% 이상을 일괄매각하기 위한 국제경쟁입찰 공고가 나갈 예정이었으나 이달 말로 미뤄졌고, 이런저런 이유로 일러야 4월 이후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입찰공고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의 고위 관계자는 22일 "한중을 비싸게 팔아야만 특혜시비가 일지 않을 것" 이라며 "서두르지 않고 입찰에 유리한 시점을 찾을 방침"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처럼 한중 민영화에 신중한 것은 입찰가격도 가격이지만 자칫 정부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대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삼성중공업의 발전설비.선박용 엔진과 현대중공업의 발전설비를 떼내 한중으로 일원화하는 빅딜을 어렵게 성사시켰는데, 다시 이들 기업이 한중 인수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 실제로 한중 민영화는 삼성.현대 두 그룹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이들 기업 내부에서는 "발전설비.선박용 엔진을 일단 한중에 떼준 뒤 나중에 통째로 사들이면 된다" 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삼성.현대가 단독으로 한중 입찰에 참여하기보다 제너럴 일렉트릭 (GE) 등 다국적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만들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그래야 단독 인수에 따른 부담을 덜고 외자유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이들 기업을 빼고는 현실적으로 한중을 인수해 경영을 해나갈 회사도 없는 상태. 대우그룹은 자체 구조조정에 바쁘고, LG.SK는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발전설비.선박용 엔진사업을 한중으로 넘기는 작업도 순탄치 않다.

두 그룹은 이들 사업부문의 자산을 미래가치를 포함해 각각 4천억원 정도로 제시하고 있지만 한중은 훨씬 싸게 인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용승계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는 현대.삼성과 한중의 협상이 난항을 겪자 22일 3사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오강현 (吳剛鉉) 산자부 차관보 주재로 회의를 갖고, 25일까지 자율합의하지 못할 경우 제3의 평가기관에 맡기기로 했다.

이 경우 4월중에는 민영화 입찰공고를 낸다는 계획이다.

한중 노조와 지역여론도 걸림돌. 공장소재지인 창원지역 시의회는 "한중을 민영화하면 고용불안이 야기되고, 협력업체가 피해를 볼 것" 이라며 민영화 연기를 촉구하는 건의문을 최근 산자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고현곤.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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