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서 '출자총액제한' 설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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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학회의 국제학술대회에서 정부 관료와 민간 학자들은 전날 경제현실에 대한 뚜렷한 인식 차이를 드러낸 데 이어 13일에는 기업규제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대신 참석한 조학국 부위원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시장개혁 등 경제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며 ▶출자총액제한▶계열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선진국형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등 공정위의 기존 입장을 그대로 밝혔다. 그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그룹 전체가 경영권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조 부위원장은 특히 "일부에서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고 의욕을 꺾는다며 이 제도의 보완.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기업의 투자를 억제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관석 미 노터데임대 교수는 "과거 외환위기는 과도한 투자가, 현재의 경제위기는 투자 부족이 위기의 원인"이라면서 "외환위기 때 사용했던 정책을 환경이 완전히 바뀐 요즘에도 쓴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훈 서울대 교수는 "혁신하려면 철저한 자유가 깔려 있어야 한다"며 "규제는 목표가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혁신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험이 큰 곳에는 투자가 없다"며 "변덕스러운 정부 밑에는 항상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현직 정부 관료가 최근 다소 현행법에 어긋나더라도 노동자를 옹호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는데 정부의 고위 관료가 법을 어길 수 있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 이날 회의에서는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이 문제라면 기업 안팎의 견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풀어야지 출자총액제한 제도로 해결하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지적(이제민 연세대 교수) 등 민간 학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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